평소에도 가족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추석이 끝나면 그
사연이 좀 독특하다. 여성들의 상담이 많은 편인데 공통점은 명절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밀리는 차에 시달리며 시골 내려가는 것이 싫다거나
가족들 얼굴을 안 보고 싶다는 정도를 지나, 어깨와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되고 잠도 잘 안 오는 신체적인 증상까지 호소할 정도이고 보면 뭘
그리 엄살이냐고 외면할 일이 아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부엌일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마음 고생이
더 큰 고통이다. 가장 가까운 남편마저 나 몰라라 하고 술 마시고 웃고 떠들면 속이 상한데 같은 여자이면서도 동서나 시누이, 시어머님의 서운한
얘기에는 더 화가 치민다. 명절 때도 딸 얼굴 한 번 못 보는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면 더욱 서럽고, 사는 형편이 비교가 되고 아이들 성적이나
대학 얘기라도 나오면 마음이 편칠 않다는 하소연이다.
가족이 함께 모이면 늘 즐겁고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웃이나 친구는
적당히 멀리 할 수도 있지만 가족은 싫고 미워도 안 볼 수 없기에 고통이 더욱 크다. 그리고 이전의 가족관계에 갈등과 오해가 쌓이고 불화가
잦았던 가족일수록 명절은 더 큰 불청객이 되는 것이다. 추석이나 설, 명절 그 자체가 우리에게 웃음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므로 평소에
자주 연락하고 만나면서 친밀감과 사랑을 쌓아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자들만의 일이라고 미루지 말고 장보기나 상 차리기,
간단한 설거지는 가족이 함께 분담하고, 쉴 때는 같이 쉬고 놀 때는 같이 놀 수 있도록 집안의 어른이 한 마디 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못
먹던 그 시절도 아니니 음식을 좀 간소하게 하면 경비와 일거리를 동시에 줄일 수 있고 친정 부모님을 찾아 뵐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부부간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최고다. 사랑하는 남편이 나의 어려움과 억울함을 이해해
준다면 며칠쯤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서 살아도 좋다는 아내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예전의 어머님 세대에 비하면 우리들의 고생은 고생도 아니라며,
오히려 중간에 끼어 마음 고생하는 남자들의 고충까지 읽어주는 여성도 있다.
아내를 챙기고 대변하는 것은 팔불출이라고 교육받아왔던
많은 남성들은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타인의 이목 때문에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도 익숙하지 않지만 이제 좀더 적극적으로 남편
역할을 찾아야 한다. 누구에게는 즐겁지만 누구에게는 고통인 추석이 아니라 온 가족이 다 즐길 수 있는 명절이 되기 위해서도 부부가 한 팀이 되어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지혜로운 전략이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