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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혁명의 주인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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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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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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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혁명의 주인공
K대학에서 ‘결혼과 가족’을 가르치는 금요일이 나에게는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다. 늘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해 주는 학생들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기초에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우리 가족과
가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실천하고자 하는 일 한 가지를 써내라’ 는 과제를 주었다.
내 방 청소하기, 일찍 일어나기, 아침밥
꼭꼭 챙겨 먹기, 옷 벗어서 제 자리에 걸기, 인사 잘 하기, 엄마가 상 차리는 것 도와 드리기, 세탁물 빨래통에 잘 넣기,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기, 부모님과 함께 교회 가기, 용돈 아껴 쓰기, 웃는 얼굴 하기... 술 줄이기, 밤 12시까지 귀가하기,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께 자주
전화 드리기, 설거지하기 같은 내용만 제외하면 유치원생들의 숙제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스물을
넘긴 대학생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안 하고 사는 것일까 싶어 놀라웠고, 그것이 바로 기본을 가르치지 않은 부모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변화하는 가정, 아름다운 ‘기적’ 내 자식 내가 귀하게 키우겠다는 부모의 정성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정말 내 자식을 위하는
일인지, 그것이 도를 넘어선 일이 아닌지는 헤아려 봐야 한다.
공부만 하면 모든 의무에서 면제해 주고 그저 오냐오냐 자식을
떠받들며 키우는 건 아닌지,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을 즉각 갖다바쳐야 하는 채무자나 현금 지급기로 부모가 전락한 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집안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이들 기 죽일까봐 쉬쉬하며 그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가느라 부모들 등만 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녀가 고3쯤
되면 그 정도가 극에 다다라 엄마가 파출부 일을 하거나 빚을 내서라도 과외를 시켜야 하고, 자식들 공부에 방해될까 봐 부부관계도 눈치보며 삼가는
시대가 되었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도 모르고 ‘부모의 의무로 당연히 해야 할 일, 왜 그리 생색 이냐’ 는 투로 다른 집처럼 왜
못해 주느냐며 항의하는 자식들도 있다니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매주 제출하는 학생들의 중간 보고서에 숨어 있는 놀라운 변화와 ‘기적’
들을 발견하고는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으로 가슴이 뛰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는데 그냥 예전처럼 살라’ 고
놀리면서도 가족들이 그렇게 즐거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용돈에 인색하던 아빠가 큰 돈을 주기도 하고 밖에서 일어난 일을 엄마,
아빠에게 자주 얘기해 드리고 나의 고민을 함께 의논했더니 부모님도 걱정거리를 털어놓으며 자신에게 조언을 구해 와 기분이 무척 좋았다는 사례도
있었다. 엄마가 그렇게 애원해도 담배를 못 끊었던 아빠가 딸의 정중한 한 마디에 ‘금연’으로 돌입했다는 얘기는 가정혁명의 주인공 자리에 자식들도
당당히 합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산 증거였다.
또한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대단한 변화와 거창한 투자가
따라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자녀의 의무, 부모의 의무 자식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부모가
가르칠 수 있을 때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이제는 자녀들에게 가족의 일원 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일깨워 주자. 그리고 당당하게 일을 가르치자. 그것이 인내와 노동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는 일이기도 하며 훗날 자신의 가정을 경영하는 데에 필요한
태도와 지혜를 미리미리 공부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불쑥 손을 내밀어 자식들을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것도 부모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는 것이라면 지금부터라도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정혁명과 가정경영의 주인공 자리를 부모가 독점하지 말고 자녀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그 즐거움을 맛보게 하자. 황사와 안개로 며칠을 흐리더니 해가
쨍쨍한 오늘은 흡사 한여름 같은 날씨다.
아침에 눈을 뜬 딸아이 (18)가 환한 햇살에 “야, 오늘은 빨래 널기 좋겠다” 기에
이제 아줌마 다 됐다고 놀려댔지만, 엄마가 해 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며 “엄마는 날 부려먹으려고 앞치마 해 준 거 아니냐” 는 녀석의
투정이 밉지 않았다.
(주)대교 사보<프로의 눈>에서 2002년 5.6월호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주)대교 사보[프로의 눈]2002년 5,6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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