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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간의 가족 國土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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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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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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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간의 가족 국토여행
따뜻한 방에 몸을 누이면 그 공간이 고마웠다. 어릴 적, 방 안의
물이 얼 정도로 추운 겨울 밤, 어머님이 몸소 따뜻하게 덥혀 놓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던 그 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라
‘행복’이란 단어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참 행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나를 아껴 주시던
P선생님께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편지를 드렸더니 50명 가까운 반 친구 전원의 편지를 몽땅 보내주셨었다. 내가 뭐길래 이런 사랑을 베푸실까 싶어
가슴 가득 밀려오는 행복감으로 그 편지들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른을 넘겨 뒤늦은 공부를 한다고 영국과 핀란드에
혼자 가 있을 때 아내가 매일매일 부쳐주던 편지들 때문에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었다.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가 매일 뜨는 것이 아니어서
두세 통의 편지가 함께 도착하는 날도 있었는데 아내의 편지를 먹으며(?) 그 힘든 날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와 아이들까지 들어와 몇
년을 함께 살았지만 그 때는 또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노래가 얼마나 그립던지...... 한국에 오자마자 시큼한 김치와 두부로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시차 때문에 오지 않는 잠을 한국 비디오로 달래며 눈물을 글썽거린 적이 있다. 그래도 다음 날, 새벽 일찍 떠지는 눈을 어쩔 수 없어
아내와 함께 츄리닝 바람에 슬리퍼 끌고 뜨끈뜨끈한 동네 목욕탕에 몸을 담그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칡즙으로 갈증난 목까지 축이니 임금도
부럽지 않았다.
연구소가 인사동에 있어 점심 먹고 화랑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즐거움 중의 하나 인데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만나는
희열이 또 얼마나 큰지, 사고 싶다는 욕심만 자제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취미이기도 하다. 어느 가수를 20년 넘게 열렬히 좋아하는
나에게 그 가수가 여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농담을 아내가 가끔 한다. 오십이 넘은 그 가수가 눈물을 흘리며 무대에서 부르는 ‘모란동백’이 내
가슴에 절절히 와 꽃힐 때, 나는 그 행복감에 압도되어 몸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1988년 1월 2일,
가족과 함께 떠난 14박 15일간의 국토횡단 여행을 빼놓을 수가 없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도전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D사의
대표이사직을 그만 두었을 때, 딸 아이는 중3, 아들 녀석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특별한 행사를 통해 가족이 오랫동안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하나 만들고 싶었다.
그 전에도 두 차례씩 국토횡단, 종단 도보여행 경험이 있었던 아이들이었지만 서울에서
동해까지 걸어서 걸어서 280Km를 가로지르는 그 힘든 여행에 따라나서 준 아내와 아이들이 고마왔다. 가족과 함께 한 두 차례 국토횡단
첫날은 무리하지 말고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로 걷자던 내 계획은 처음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숙소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팔당 주변에는 음식점만
있지 숙소는 없었으며 어두워지는 날씨에 하룻밤만 재워줄 수 없느냐는 부탁에도 모두가 고개를 내저었다.
춥고 배고프고 날은
어두워지고, 나 때문에 가족들만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은 급해지고...... 첫날을 무리한 탓인지 둘째 날엔 발목까지 삐어 오히려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챙기는 처지가 돼 버렸다. 여행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정도는 아니어서 압박붕대에 파스를 온몸에 붙이고 침을 맞아가며 강행한
가족여행이었지만 고생만 한 것은 아니었다.
꼬박 보름을 함께 먹고 자고 걸으면서 미처 몰랐던 아이들의 또 다른 면도 발견 하고
끈끈한 가족애도 확인하면서 행복해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도 배웠다. 밥 한 그릇에 된장찌개 한 숟갈이 꿀맛이었고 지친 몸을 따뜻한 방에 누이면
네 식구가 쉴 수 있는 그 조그만 공간이 있음이 가슴 저리도록 고마웠다.
마땅한 숙소가 없어 동네를 돌아다니며 하룻밤을 ‘구걸’
할 때 조건없이 재워주고 먹여 주시던 과수원집 할아버지, 할머니, 끝까지 돈을 사양하며 정성들여 침을 놓아주시던 한의사 선생님, 비를 맞고 처마
밑에서 떨고 서있는 우리를 보고 이 추위에 무슨 고생이냐며 자기 집에 가서 뜨거운 물이라도 한 잔 하자시던 할머니,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던 눈꽃, 눈꽃을 이고 혼자 푸르게 서 있던 정선의 소나무들, 지치고 힘들어 말도 하기 싫을 때 핸드폰으로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던 형님과
친지들...... 기쁨과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늘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는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그런지 돌아보니 행복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다. 늘 조그마한 것에도 기뻐하고 ‘나는 항상 복받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월간조선 2002년 1월호 부록
한국인의 행복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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