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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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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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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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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나에겐 화장실 낙서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창원 훈련소 시절,
급하게 뛰어들어가 쪼그리고 앉은 내 눈 앞에 ‘옆을 보시오’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을 보니 다시 ‘뒤를 보시오’ 라고 씌어있는 게
아닌가.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람 실없긴. 그러나 그‘뒤’에 적혀 있는 낙서를 보고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법구경에 나오는
이런 구절로 기억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날까 두렵다’ 못 만나서 괴로울 정도의 사랑하는 사람도, 만날까 두려울 정도의 미워하는 사람도 없지만 사십 몇 년을 살아오면서 나도 참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졌다.
내 의지로 선택해서만난 인연은 아니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많은
은사님들, 우리 말과 우리 글에 눈뜨게 해주신 M선생님과 20년 넘게 나의 귀와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가수 J씨, 영국 옥스포드에 살 때
가족처럼 따뜻하게 챙겨주시던 이웃 할머님, 노르웨이 여행 때 만난, 한국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던 부부,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동해까지 보름동안
걸어서 국토를 횡단할 때 재워 주고 먹여 주고 무료로 침을 놓아주시던 과수원 할아버지, 할머님 그리고 한의사......
그러나 내
인생에서 그 어떤 만남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만남은 아내와의 만남이다. 올 11월 22일이면 아내와 보금자리를 꾸린지 만 20년이 되는데 나는
그녀를 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은 밖에 나가 ‘가정’과 ‘부부관계’에 대해서 강의하고 대학에서 ‘결혼과
가족’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 때가 되면 결혼하는 거고 또 때가 되면 아이는 생기는 거고, 집안살림하고 애
키우는 것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하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결혼의 진정한 의미나 아버지 역할, 남편 역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애정표현에도 인색하고 서툴러서 신혼여행갔던 제주도에서 아내를 다정하게 좀 껴안고 찍을 수 없느냐는 사진사의
얘기에 어색한 몸짓으로 머뭇거리다 바위에서 미끄러져 물에 빠진 적도 있었다. 신혼 초에도 아내를 집에 두고 혼자서 영화보러 가고 회사 일과
친구와의 약속으로 밤늦게 들어가기 일쑤였으며 집안 식구들 앞에서 아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는, 준비 안 된 남편이었다.
그런 무심한 남편이 결혼 10주년을 넘기며 조금씩 조금씩 철이 들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우선순위를 둘 줄도 알았고
아이들과의 저녁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가정경영연구소를 시작하며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눈을 뜨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화목한 부부관계가 우선이며 아무리 크게 성공했더라도 가족없는 가정, 가정없는 가족이라면 그 의미가 반감된다는 것도 다시
배웠다. 그리고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돌아보며 부끄럽지 않은 아빠, 존경받는 남편이 되기 위해 내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갔다.
먼저 아내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말을 자르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성급하게 해결책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속상했을까, 참
많이 서운했겠구나’하고 최대한 아내 입장이 되어 보려고 애썼다. 보던 신문도 잠시 접고 TV에서도 잠깐 눈을 돌려서 아내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내의 부탁에 즉각 즉각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알았어, 한다니까’ ‘그래 해 준다구, 해 준다는데도 그러네’ 하면서 미루지 않고 아내와
사랑을 나누던 그 시절, 그 때였더라도 내가 이랬을까 반성하면서 아내를 챙겼다. 또한 쑥스럽고 낯간지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애정 표현도 ‘아내가
원한다면 못할 건 또 뭔가’라는 생각으로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려고 힘썼다.
결혼 20주년을 앞두고 과연 ‘부부’란 뭘까를
생각해 본다. 가정을 받치는 튼튼한 기둥으로 아이들에는 환경이 되고 모델이 되는 것이 부부가 아닌지...... 서로 알몸이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이, 잇사이에 끼인 고춧가루를 식당에서 떼어줄 수 있는 사이, 그리고 등에 난 종기를 짜다가 고름이 얼굴에 튀어도 빨리만 나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기쁜 사이, 그런 게 아닐까?
시집 와서 아이들을 낳아주고 키워주고 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주며,
편안하게 가족이 쉴 수 있도록 우리 가정을 가꿔 준 아내, 바깥일 하는 남편이 설거지하거나 출근길에 쓰레기 버리는 것 달가와하지 않고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것이 아내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아무리 이른 새벽이어도 눈비비며 일어나 옷 챙겨주는 아내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임에
틀림없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함께 살 날이 더 많은 우리의 앞날이 더 즐겁고 성장하는 나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가장 가까이,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홀해지기 쉬운 사이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서로를 존중하면서 이제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손잡고
함께 걸어가야겠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현대모터 2001.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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