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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노후 대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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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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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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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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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노후 대책
눈높이로 알려져 있는 (주)대교의 대표이사직을 그만둔 것이
1997년 12월 31일이었다. 어머님은 물론 형님,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못 했다. 처음부터 찬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아내와
아이들은 오히려 쉽게 설득이 되었다.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이라면 말리지 않겠다는 가장 큰 응원군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배부른
사람의 사치쯤으로 여기거나 말 못할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결정이었지만 20년 가까이 나의
청춘을 바쳤던 회사였기에 마음은 착잡했다. 그만둘 날이 가까워져 오니 내가 포기해야 할 기득권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1998년 1월 2일, 서울 집을 떠나 걸어서 걸어서 강원도 동해까지 국토를 횡단하는 14박 15일의 여행길에 올랐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아이와 중학생이 되는 아들 녀석,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한, 새 출발의 의미를 다지기 위한 가족 여행이었다. 24시간을 함께 먹고 자고
걸으며 가족애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꿀맛 같은 밥 한 그릇과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방 한 칸에도 충분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조건 없이 베푸는 시골의 훈훈한 인심과 햇빛에 반짝이는 눈밭과 소나무, 그리고 맑은 공기에 아름다운 이 땅의 국민임을 감사했다.
단념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많은 기득권과 재량권에 내 일을 즐겼지만, 한편으론 내가 소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었다.
그리고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 인생의 전환점을 구상해 보았다. 가정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나의 일, 나이가 들어도 계속 연륜을 쌓을 수 있는 일, 30년, 50년 후에도 쉽게 변하지 않을 가치, 그리고 책 읽고 글 쓰고 강의하는 일을
좋아하는 내 적성을 더 잘 살릴 수 있는 일.... 그리고 나는 ‘가정경영연구소’를 열었다. 2000년 1월 1일 문을 연 연구소는 이제 2년
반을 넘겼다.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반가우면서도 그들의 갈등과 불화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안타깝고 답답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로지 일과 돈만을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실직이나 부도라는 위기 앞에서 금이가고 해체되는 가족들을 보면 남이 아닌 바로 십
수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가 있다.
지금은 가정과 가족이나 부부 문제를 떠들고 다니지만 결혼할
당시엔 나도 결혼이나 아버지됨의 의미를 몰랐고, 남편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더더욱 몰랐다. 최고 경영자나 기업의 임원들과 만날 기회가
잦은데, 가족 문제로 고민하는 이 땅의 남성들을 보면서 기업을 경영하는 유능한 오너라고 해서 가정경영도 잘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세계화’를 외치며 각종 경영혁신 전략으로 무장하고 ‘변화경영’을 주장하면서도 가정을 둘러싼 변화에는 너무나 둔감하여 아내와의
관계나 성인이 되어가는 자식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몰라 애태우는 경우를 많이 본다. 밀리는 결재서류, 연일
계속되는 회의, 불안한 경기전망과 갈수록 더해가는 생존 경쟁, 그리고 우리 회사가 살아남느냐, 내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느냐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한가하게 ‘가정’을 얘기하고 부부’를 논하는 것은 사치라고 할른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일과 가정의 균형을 생각할 때다. 일과 술, 친구와 골프만
챙기지 말고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도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결혼만 하면 행복한 가정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돈만 벌어다 주면 모든 의무에서 면제되던 꿈같은 시대는 이미 지났다. 부부 사이는 주종 관계나 상하관계가 아니며, 부모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자녀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직은 건강하고 경제력이 있어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누리고 있지만 부부나 부모자녀 관계도 일종의
권력 관계여서 그 힘의 중심이 서서히 아내와 자식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아들, 딸 시집보내고 나면
결국 부부만 남아 20~30년을 함께 더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까지 일 중심, 돈 중심, 친구 중심으로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라도 부부 중심, 가족중심의 생활로 방향을 바꾸어 보자.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이제는 일부러 만들어야
한다. 각 방에 TV나 컴퓨터, 휴대폰으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새로운 우리 집의 ‘거실 문화’를 만들어 보자. 맞벌이와
입시 공부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쪽지와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로 가족간의 대화를 시도해 보자.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 이제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 설교, 훈계는 더 이상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진정한 관심사나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먼저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설사 내 의견과 맞지 않더라도 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가를 귀담아 들어주자.
이미 가정을 꾸린 자식이라면 이제 ‘간섭’은 금물이며 지나친 보호와 지원 역시 바람직한 부모의 태도가 아니다.
성인으로서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부모도 자식을 떠나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식이 떠난 그 빈둥지를 위해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나 운동을 개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지지고 볶고 토닥거리면서도 가족이 가족일 수 있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조건 없이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 가족을 봐 주자. 내 방식대로
상대방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 주자. 그리고 칭찬과 격려, 사랑과 믿음으로 보듬어주자. 물주고 거름 주며 우리 가정을 정성들여
가꾸는 일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노후대책이고 보험이며, 자식들을 위한 가장 훌륭한 유산이자 혼수감이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EQUUS 8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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