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장남의 고민 |
|
|
관리자 |
|
|
|
2001.03.19 |
|
|
|
3992 |
|
장남의 고민
K씨(34)는 장남인 남편P씨(39)와 시할머님, 시부모님, 시누이,
시동생 그리고 두 아이까지 9명이나 되는 4세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회사원인 남편은 술을 좋아해서 술자리를 거절할 줄 몰랐고 술이 취해서
들어오면 짖궂은 애정표현으로 아내를 매번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가족들이 볼까 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고 술이 취해서 하는 사랑한다는 말과
행동들에 믿음이 가질 않았다.
게다가 걸핏하면 아이를 하나 더 낳자고 성화였으며 아이만 하나 더 낳아주면 통장에 500만원을
넣어주겠다고 허풍을 떨었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 약속했던 500만원도 안 준 사람이 또 무슨 500만 원이냐고, 그 말을 믿지도 않았지만 집이
좁아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고모집에 맡겨 둔 맞벌이 형편에 그런 소리를 하니 어이가 없었다.
결혼 전에 꿈꾸었던 신혼생활과는
너무나 딴판인 현실에 K씨는 힘이 빠지고 두 아이를 낳을 때도 술 마시느라고 병실을 지키지 않았던 남편 때문에 두고두고 상처가 되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고민이 많았다. 시집 와서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아내에게 미안했고 장남으로 번듯하게 부모님 한 번 제대로 못 모시고 고생만 시켜드려
면목이 없었으며 딸아이를 직접 못 키우고 누님에게 맡겨둔 것도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아내는 사사건건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존심을
건드렸다. 동생칭찬을 하는 아내에게 뭐라고 하면 동생을 시샘하고 질투하는 속 좁은 형으로 볼 것 같아 말도 할 수 없었다.
맞벌이하느라 바쁘기도 하겠지만 아침밥을 안 챙겨주는 아내가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닌가 싶어 기분이 나빴고 남편인 나보다도 시집
식구들과 아내가 더 친해서 자기만 왕따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남편 역시 자기가 상상했던 달콤한 결혼생활과는 달리 어른들 모시고 사는,
답답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따분하기만 했다.
술로 인해 거듭되는 상처 때문에 `술` 얘기만 나와도 지긋지긋하다는 아내를 위해
남편P씨 에게 음주일기를 써 보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술 먹는 횟수와 양을 줄이는 것으로 아내의 신뢰부터 얻도록 했다. 그리고 `낳아만 놓으면
제 먹을 것 타고 나온다`던 옛말과는 달리 이제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대책 없이 자식만 낳아 놓고 뒷감당도 못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인지를 설득했다.
대가족 속에서 가족의 모습은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장한 남편으로서는 아이
둘이 성에 안 찼지만, 낳은 후 무슨 돈으로 누가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지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남편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기 식의 애정표현이 아내에게는 얼마나 당혹스럽고 싫은 것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K씨 아내에게는 `이런
좁은 집에서 시부모님, 시할머님까지 모시고 나만큼 하는 며느리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런 심정의 자만심은 없었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K씨가 잘 하기도 했지만 4세대가 사는 대가족에 시집 와 고생만 하는 며느리에게 싫은 소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고부간의 갈등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남편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이, 부부싸움을 하다보면 말을 막 하는 경향이 있었다고K씨는 시인을 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대놓고 서방님과 비교하는 것이 남편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를 전해 주었다.
평소 말이 없는 남편이
장남콤플렉스와 겹치는 생활고를 아내와 대화로써 풀지 못하고 술에 의지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에게는 술이 대화이자
위로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남편의 무능과 술버릇 때문인 것처럼 보였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와 상대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부부 사이와 가족관계는 대단히 상호적이고 복합적이어서 일방적으로`누구의 잘못이다, 문제가 무엇이다`라고 단정짓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이 두 부부는 의외로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변화는 나부터`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화가 빨랐다. 음주 습관을
고치려고 남편은 음주일기를 바로 쓰기 시작했고 아이를 더 낳지 않기 위해 자신이 수술 받는 것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아내 역시 자신의 `교만
아닌 교만`을 반성하고 남편을 이해하려고 먼저 다가감으로써 이 가정은 문제가 더 확대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시부모님, 시할머님, 그리고
시누이까지 K씨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따뜻해 남편 때문에 서운했던 감정까지 눈 녹듯이 해소되는 흔하지 않은 사례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대 가족이 반드시 불편하고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돌봐 주고 집안 일을 도와 주시며 생활비가
절감되고 자녀교육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부모님께 도리를 다 있다는 뿌듯한 만족감까지, 부양에 대한 보상도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장)
- "eye to eye" 3~4월호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eye to eye" 3~4월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