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내 남자의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며... |
|
|
관리자 |
|
|
|
2001.03.02 |
|
|
|
3711 |
|
"내 남자의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며 편지를 한 통 써보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장)
음악평론가 L선생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고 잠시 말을 잊었다. 며칠
전 어느 행사장에서 만났던 그의 얼굴이 생생한데 승용차에서 짐을 내리다 부인이 변을 당했다니 그 충격이 어떠했을까? 며칠 전의 환한
웃음과는 달리 그 좁은 어깨가 더욱 작아 보이고 예순이 넘은 남자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슬펐다. 빈소를 돌아나오는데 장례용품 전시장이 있어
발길을 옮겼다. 20∼30만원짜리 오동나무관도 있었지만 옹이가 없는 육각 향나무관은 180∼190만원을 호가했고 안동포로 짠 수의는 400만원
가까운 고가였다. 한 줌 재로 돌아갈 몸에, 죽은 후의 그런 대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아내가 죽으면 새 장가 갈 생각에
화장실에서 웃는다는 얘기는 우스개소리일 뿐, 배우자의 사별만큼 더 큰 스트레스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속썩이고 애먹이고, 어느
순간엔 꼴도 보기 싫은 남편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차지한 공간이 얼마나 큰가는 남편이 떠나기 전엔 모르는 법이다. 남편이 죽고 없는 썰렁한
잠자리며 손잡고 들어가 줄 아버지가 없는 딸의 결혼식, 남편이 없는 시댁에서의 자리, 그리고 자식 키워놓으면 제 짝 찾아 훨훨 떠나버리고
허전하게 남겨질 빈 둥지까지…. 남편이 죽고 없는 세상을 상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분이 있었다.
죽음이 내 앞에 왔다고
가정하고 남편에게 띄우는 유서 한 통을 미리 써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없는 세상, 풀죽고 기죽어 후줄근하게 살아갈 내 남자를 떠올리며 눈물
샘을 자극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써도 좋다.
한때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남자, 내 알몸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남자, 우리
가족을 위해 매일 힘든 전쟁을 치르는 남자, 끔찍히도 소중한 내 아이들의 아빠, 나 아프면 밤새워 내 옆을 지켜 줄 남자, 내가 죽으면 내
아이들을 거두어 줄 남자…. 바로 그 남자의 잠든 모습을 한 번 들여다보자. 피곤에 지쳐, 술이 취해 곯아떨어진 남편의 불룩한 배까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 여성조선 2000년 5월호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여성조선 2000년5월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