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만나러 가는 날"
나지막한 산등성이와 누우런 들판이 정겹게
다가왔다. 고향의 가을 바람은 달았다.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며느리들과 손자 손녀들이지만 매년 할아버지 산소를 찾는 것이
벌써 20년이 되었다. 명절 때는 차가 밀려 10월이나 11월 주말을 이용해 다녀오는데 이제는 집안의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어머님께는 가장 큰 즐거움이어서 바쁘다는 이유로 거른 적이 한 해도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형제들이 돌아가며 가족모임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고향으로 떠나는 전가족 나들이는 또다른 흥분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내 자식만 챙길 줄 알았지 나를 키워 주신
부모님께 아이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챙겨드리지 못한 미안함이 늘 있었다.
하지만 손자 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나
가능함을 뒤늦게 알았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이 우선이어서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조차 내기 힘들다.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지 가족들 얼굴조차 보기 힘든 생활들이지만 가족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차라도 한 잔 하는 시간, 식사를 함께 하는
시간은 일부러,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은 없기 때문이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손자 손녀들을 안아보는 즐거움을 챙겨드리자. 할아버지, 할머니는 훈육자, 정서적 지지자로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성장시키고 심리적으로 발달시켜 주는
훌륭한 부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족간의 결속을 더욱 튼튼하게 하는 지름길이요 부모님께는 둘도 없는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부모님이 불행한데 행복할 수 있는 자식은 없다.
경제적인 봉양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으로 교류하며 삶의 의미와 역할을 찾아드리는 것,
그것이 최고의 효도이다. 겨울이 저만큼 와 있다. 추운 날씨야 옷을 껴입고 난방을 잘 하면 되지만 부모님의 스산한 마음이야 자손들의 따뜻한
손길로만 덥힐 수 있지 않을까.
여성조선 12월호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여성조선 2000년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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