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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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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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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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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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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동사"
사랑은 국어사전에나 나오는 단어인줄 알았다. 사랑은 연애편지에서나
오고가는 것인줄 알았다. 젊었을 때 열정적으로 연애하던 시절에나 사랑이지 40,50대 나이든 사람들이 무슨 사랑타령이냐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난 보았다. 사랑의 씨앗을. 내가 아이들을 꼬옥 껴안았을 때 사랑의 씨앗 하나가 아이들의 가슴 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포옹과 칭찬이라는 사랑의 물을 듬뿍듬뿍 주고 정성들여 가꾸었을 때 그 조그만 싹이 나날이 자라나는 것을.
예순이 다
되어가는 어느 부부를 알고 있다. 남편의 성격이 불같아서 한 번 화가 나면 온식구들이 벌벌 떠는, 전형적인 독재자였다. 그 날도 무슨 일로
투닥거리다가 부부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지고 스무 살이 다 된 딸아이가 기절하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그 일이 있은 후
이 아버지는 조금씩 변해갔다. "여보, 나 죽기 전에 당신 먼저 가면 안 돼.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엄마의 손을 꼬옥 잡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린 아빠의 눈 속에서 잘익은 50대의 사랑을 보았노라는 그 딸자식의 얘기에 가슴이 뭉클했다.
사랑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TV나 영화에서 곱게 포장해서 보여주는 낭만적인 사랑만 사랑은 아니다. 내가 주고 싶을 때, 내가 주고 싶은 것만 주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은 사랑, 전달되지 않은 사랑도 그 의미가 반감된다. 사랑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난 잘 모른다.
사랑의 유형이 어떻고 사랑의 요소나 조건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소박하게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을 뿐이다. 오래 전,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이 사이에 뭐가 끼지나 않았나
서로서로 확인해 주던 기억이 난다. 고춧가루나 후춧가루가 끼지나 않았는지 봐 달라고 입을 벌릴 수 있고 남의 시선에 창피하게 생각지 않고 그것을
떼어줄 수 있는 마음이 사랑은 아닐까? 내 등에 종기가 나서 고름을 짜 주다가 그 고름이 아내 얼굴에 튀었건만 더럽다는 내색 않고 오히려 빨리
낫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아내의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부부싸움 끝에 쳐다보기도 싫은 남편이지만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더 따뜻한 밥을 준비하는 것, 12시 넘어 귀가하려던 것을 아내를 생가하고 술 한 잔을 줄인 뒤 서둘러 집에 돌아가는 것, 다다다 퍼붓고 싶지만
아이들이나 남들 앞에서 남편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쑥스럽지만 고마워, 힘들지? 사랑해 한 마디를 아끼지 않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사랑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난 참 이기적이었다. 설거지를 도와주겠다는 나의 제의를 아내는 반가와하지 않았다. 출근길에
쓰레기 버려주겠다는 내 말에도, 출근하는 남편 손에 혹시 냄새라도 밸까봐 한사코 사양했었다.
그런데도 아내과 함께 여행갔다
돌아오면 난 신문이나 TV보기에 바빴다. 그리고 내 앞을 왔다갔다하며 청소하는 아내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내가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슬그머니 눈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행복한 가정과 부부의 사랑을 떠들고 다니는 가정경영연구소장 자격이 있기는 한
걸까, 내 자신을 반성하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여보, 이렇게 만날 거였으면 좀더 일찍 내 앞에 나타나지." 조금은 쓸쓸했고 외로웠던 나의
20대를 떠올리며 내가 건넨 진심이었다. 이제 관념적인 사랑, 지나치게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내 나이에 맞는 사랑, 우리 부부 에게 어울리는
사랑법을 개발해야겠다. 사랑은 결심이고 실천이고 동사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구조조정의 여파로 시장은 꽁꽁 얼어붙고 버려지는
아이들은 늘고 금이 가고 해체되는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과 격려, 칭찬과 믿음, 인정과 배려로 우리 집안을 가득 가득 채워 나간다면
이 겨울이 한결 따뜻해지리라.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던 주식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지만 탄탄하게
쌓아올린 가족간의 믿음이나 사랑, 끈끈하게 맺어진 가족간의 유대감이나 응집력은 없던 집, 없던 차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
사랑할 줄 아는 것, 사랑을 표현하는 것, 그것은 능력이다. 사랑해야 사랑한다고 하지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사랑을 표현하다 보면 잊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도 회복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다.
사랑, 나는 이제사 사랑을 쬐끔
알 것 같다.
강학중(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 - 눈높이사랑 12월호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눈높이사랑 2000년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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