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인내심
‘당신, 가정경영연구소장 맞냐’는 아내의 얘기에 할 말이
없었다. 방학이라 아이들이 영국에서 온지 두 달이 다 돼 가건만 하룻밤 어딜 다녀오거나 영화 한 편 같이 못보고 여름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다.
모처럼 내가 일찍 귀가해도 한국 TV에 갈증이 나있던 녀석들이라 대화할 시간을 제대로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다행스럽게도
내 말에 따라 순순히 TV를 꺼 주었다.
먼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내질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작년 여름방학보단 훨씬
계획적으로, 알차게 두 달을 보내준 데 대해서 고맙다는 인사부터 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서운한 점이나 바라는 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멈칫멈칫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던 딸과 아들녀석은 염색을 하고 휴대폰을 하나 사고 싶다는 얘기와 함께 이번 겨울방학 때 수능고사 끝나는
친구들과 함께 어디 하룻밤 놀러갔다 오면 안 되느냐고 내 의견을 물었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지만 자기 주장이 너무나 당당하고 거침없어 끝까지 꾹 참고 들어주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이제껏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일방적으로 내 얘기만 한 건 아니었는지,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말을 끊고 다그치거나
충고, 훈계, 설교조로 늘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든 건 아니었는지…. 좋은 말로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대화라고 착각하고 일방적으로 지시,
명령, 강요하다가 아이들 태도가 공손치 못하거나 고분고분하지 못하면 언성부터 높이고 꾸중만 한 건 아니었는지 자문해 봤다. 모처럼 하고
싶은 얘길 다 해서 속이 시원하다는 딸아이에게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쉽게 결론 못 내린 부분에 대해선 서로 생각할 시간을 좀
가지자는 말로 얘기를 끝냈다.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 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의 얘기를 나눴다는 것이
큰 수확이었다.
가끔은 TV 안 보는 날을 하루쯤 만들어 보자. 그리고 자녀들과의 대화를 어려워하거나 피하지만 말고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자. 서먹서먹해진 부모 자식간의 벽을 조금씩 허물 수 있도록 부모부터 마음의 문을 열고 부모가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밀자.
항상 감사와 칭찬, 격려의 얘기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관심사에 대해서 얘기하자. 그리고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어주자. ‘오, 하나님! 제 인내심을 언제까지 시험하시렵니까’ 그런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 나면 가슴뛰는 서광이 서서히 비쳐오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여성조선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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