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농사, 부부농사
가정경영연구소장이니 가정경영을 참 잘하겠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떨칠 수가 없다. 남들에게 매번 좋은 남편이 되라고 하면서 나한테는 이것밖에 못하느냐고 아내가 농담 섞인 불평을 할 때도 은근히
압박감을 받는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 아이와 아들 녀석이 방학이라 집에 온지 한 달이 넘었건만 아직 제대로 시간을 함께
하질 못해 내가 과연 가정경영을 주장하는 소장 자격이 있나 자문해 본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녀석들의 취향과 관심사가 나하고 틀려 TV 채널
때문에 리모콘을 뺐고 뺐기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바쁜 아들 딸과의 시간은 예약을 해야 맞출 수가 있을 정도다. 그것을 미처 예측
못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지난날을 돌아보면 후회스럽기도 하다. 한창 아빠·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그 때, 난 너무 바빴고 너무 피곤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충분히 낼 수가 없었다.
요즈음,
자식농사에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니 그 때를 놓치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의 반성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노력은 했다.
유치원을 보낼 때 동네 근처 유치원을 다 돌아보고 원장을 만나본 다음, 주변 환경, 시설, 분위기 그리고 원장의 교육방침을 고려하여 유치원을
선택했다. 초등학교에 보내고서도 귀한 내 자식 맡아주시는 선생님께 대한 인사라면 몇 번을 못 가랴 싶어 학년 초, 학년 말에는 반드시 인사드리러
학교에 갔었다. 또 졸업식, 입학식은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새 출발을 축하해 주었다. 서점이나 극장, 화랑, 음악회에 자주 데리고 가서
무엇엔가 눈뜨게 해 주려고 노력했고 서울에서 동해까지 걸어서 국토를 횡단하는 14박 15일간의 가족여행을 통해 강인한 정신력과 끈끈한 가족애를
심어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 키우는 문제에 아내와의 의견 차이가 있어 가끔은 원망도 듣고 다투기도 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통일된
노선을 보여주려고 애썼고 아빠와 저녁 좀 같이 먹어봤으면 하는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부턴 일주일에 네 번 저녁식사 함께 하기 약속은 거의 어기질
않았다. 귀고리나 머리 염색 같은 것은 못 마땅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욕구를 이해하려는 성의를 보이면 그들도 자기의 욕구를 절제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허락을 했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추어 아버지의 역할도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고 무슨 일이든 가장 먼저 상의하고 싶은 사람이 아빠,
엄마이기를 바라는 우리의 희망을 얘기하고 아들, 딸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자녀교육하면 자식을 이렇게 가르치고
저렇게 움직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자식은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 그대로 닮는다고 믿는다.
지난 달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언젠간 부모 품을 떠나 자신의 두 다리로 건강하게 설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자식농사라면 자식농사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부부농사라고 믿기 때문이다. 화목하고 사랑하는 부부, 정직하게 열심히 사는 부모 모습은
자식에게 훌륭한 환경과 토양이 되어 이탈할 수 없는, 건강한 인생의 궤도를 만들어 준다고 확신한다. 몸 튼튼하고 세상일을 늘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 스스로 모든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독립심, 그리고 누구와도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성품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주)노벨과 개미 개미가족 2000년 가을호(통권 제23호)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노벨과 개미 2000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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