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서 만나는 신랑, 신부들은 곱기만 하다. 싱싱하기도 하고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저들의 앞날에 무슨 불행이 있을까 싶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생각하며 결혼식 내내 자리를 지키는 편이다.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며 내 결혼생활을 돌아보기도 하고.
하지만 그처럼 축복 속에서 출발한 결혼이 왜 채 몇 년, 몇 달도 못가 불화와 파경으로 치닫는 걸까?
Lederer & Jackson은 The Mirages of Marriage(1968)라는 책에서 결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결혼이란 1월에 느긋한 휴가를 보내기 위해 플로리다행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비행기를 잘못 타서 자신이 스위스
알프스산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수영과 햇볕 대신 차가움과 눈이 있다. 물론 당신이 겨울 옷을 산 후에 새로운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고 나면, 플로리다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처럼 스위스 알프스산에서의 휴가도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결혼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은 큰 놀라움 중 하나이다.」
결혼에 대한 환상
우리는 결혼에 대해서 잘못된 신화나 지나친 기대, 낭만으로만 채워진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환상이 깨질 때 절망하고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결혼 전에는 나하고 뭔가 다른 상대방에게 한없이 끌려서 남들이 얘기하는 단점마저도 매력으로 보인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굳이 거짓말까진 안 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좋은 점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인지라 결혼해서 살아보기까지는 상대방의 단점을 볼 기회가 좀처럼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하고 끝나는 동화가 아니다. 우리들의 결혼만은
다를
것이라는, 우리의 사랑만은 변치않고 영원할 것 이라는 신혼부부들의 믿음도 24시간 내내 365일 계속되는 생활 앞에서는 금이 가고
마는 것이다. 이에 그 갈등을 줄이고 어떻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가꾸어 나갈 것인가 그 방법을 살펴보자.
부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비결은 부부간의 갈등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새 차를 길들이거나 새
집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는데 이십 년 넘게, 삼십 년 가까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적응하는 데에는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하다. 갈등이 전혀 없는 경우보다, 갈등을 줄이고 그것을 건강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오히려 적당한 갈등이 있는 부부가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 과정 속에서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되고 서로의 성장과 성숙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 갈등의 요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성격 문제부터 경제적인 문제, 자녀 문제, 집안 문제, 애정 문제, 성 문제, 종교
문제, 건강 문제 등등. 이런 문제들을 푸는 비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갈등을 줄이는 몇 가지 해결 방법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부부싸움 십계명처럼 어떤 원칙을 부부가 상의해서 만들 수도 있고 그것은 일반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들이다.
1. 때리거나 부수지 말고 내 느낌과 생각을 말로 표현하자. 2.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인격을 모독하는 말은 삼가고
문제에 초점을 맞추자. 3. 지나간 문제를 들추지 말고 한 문제, 한 가지 상황에만 주목하자. 4. 다른 사람 앞에서, 특히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말자. 5. 제 삼자를 끌어들이지 말자. 6. 그날 일은 그날로 풀자. 7. 복수하지 말자. 8. 집나가지
말자. 9. 먼저 사과하자. 10. 부부싸움 후라도 잠자리는 함께 하자.
역할, 그 기대치와 실제
사람에게는 제각각 역할이 있다. 결혼을 하면 남편 역할, 아내
역할이 생기고 며느리 역할, 사위 역할이 더해지며 부모로서의
역할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많은 불화와 갈등이 이 역할에 대한
기대치와 실행의 차이에서 빚어진다. 특히 신혼 초 가사노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에게도 거의 불만이 없는 여성이
있지만, 장보기, 애보기에 설거지까지 돕는 남편에게도 불만이 있는 맞벌이 여성이 있다. 그것은 남편이 집안일을 얼마나 잘 도와주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기대치와 배우자의 행동 사이의 격차가 더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신혼 초에는 무엇보다 서로의 역할에 대한 기대치를
조율하고 협의하여 그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부간의 갈등
예전보다는 그 갈등이 많이 줄고 양상이 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고부간의 갈등으로 고생하는 여성이 많다. 그러나 그 갈등의 배경이나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면 그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두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란 점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미묘한 관계이다. 그런데 가부장제 하에서
유난히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유교문화권에서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했다. 교육받은 며느리가 경제권마저 쥐면서 거꾸로 며느리에게 구박받는
시어머니의 예가 가끔 보도되지만 기득권을 쥐고 있는 시어머니에게 침입자가 되는 며느리와의 갈등은 권력적인 측면에서도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인간관계에서와 같이 세대차이 또한 갈등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보면 고부간의 갈등 역시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기에 시어머니를 무조건 어렵고 완고한 가해자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사랑하는 내 남편을 고생고생 길러 주신 고마운 분으로
모시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노인들이 갖는 몇가지 특성들을 이해하고 자주 찾아 뵙고 전화드리고, 생신이나 명절 때 선물이나
용돈도 챙겨 드리면서 생활의 잔 재미를 찾아드려야 한다.
집안의 대소사 같은 일에 자주 의견을 구하고 상의하며 손자녀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챙겨드리면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찾아드리는
것이 비결이다. 어머니, 어머니하고 친정 어머니처럼 살갑게 다가서며 신체적인 접촉을 자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겠다.
대화하는 방법
부부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로 하는 요긴한 기술이 있다면 무엇일까? 운전을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학원에 등록을 하고 시내
연수를 하기도 한다.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직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러나 대화법이나 효과적인 의사소통법을 배우기 위해 따로 시간 내고 돈 들여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말 한 마디, 단어 하나, 심지어는 어투와 억양 때문에 빚어지는 그 많은 오해와 비극을 떠올리면 이제부터라도 효과적으로 말하고 듣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겠다. 이에 몇가지 요령을 요약해 보았다.
1. 잘 들어주자. 표면적인 말뿐만 아니라 몸말, 깊이 숨어 있는 속말까지 귀담아 듣자. 2. 내 느낌, 내 생각을 먼저
표현하자. 부부는 일심동체여서 내가 말 안 해도 상대방이 먼저 알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3.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내 생각, 내 느낌을 얘기하는 나 전달법으로 긍정적인 표현을 자주하자. 4.
상대방의 관심사부터 얘기하자. 5. 첫 마디는 항상 감사의 말부터. 6. T.P.O. 시간, 장소, 상황을 잘 살펴서
얘기하자. 7.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말고 무엇 때문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지
건강하게표현하자. 꾹꾹 눌러 참기만 하는 것도 금물. 8. 나의 얘기, 당신 얘기, 우리 부부
얘기를 많이 하자. 9. 지레짐작으로 속단하지 말자. 지나친 일반화나 불확실한 가정은 금물. 10.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부부의 성생활
부부가 결혼하여 원만한 생활을 꾸려 나가는데 인격적인 적응, 사회문화적인 적응, 경제적 적응과 함께 성적인 적응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대를 잇기 위한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애정으로서의 의미 또한 크기 때문이다. 성은 남자가 주도해야 하고 여성이
성관계를 먼저 요구하는 것은 정숙치 못하다는 식의 고정관념부터 버리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표현하고 대화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발기, 삽입, 사정이나 성기의 크기, 성교 횟수, 시간에만 지나치게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부부간의 성생활이란
테크닉이나 비아그라가 아닌, 진정한 사랑과 상호교감 속에서 꽃피는 둘만의 은밀한 예술인 것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
결혼 생활 19년으로 접어들며 내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아내를 내 방식대로 바꾸려 하지 말자이다. 돌아보면 참 많이도 투닥거리고
공도 들여 봤지만 소득없는 싸움이었고 실리없는 소모전이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 오면 난 커튼 치고 조명 조절하고 정좌하고
앉아서 광고 부분의 처음부터 봐야 직성이 풀리는 쪽이었고 아내는 집안일로 바빠서 한참을 왔다갔다하다가 시작을 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는 쪽이었다.
어느 방식이 옳다는 정답이 없는 것에서조차 내 방식대로가 아니면 마음이 편치 않았고 아내가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면 화가 났었다.
연애
시절, 나하고는 뭔가가 달라 서로에게 매력을 느껴서 결혼을 했지만 결혼 후에는 바로 그것 때문에 싸우는 부부들을 보면 예외없이 내 방식만을
고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마음에 드는 상대를 발견만 하면 내 결혼 생활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를 배우자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맞추려는 노력은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 방식만을 고집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 내가 생각하기에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까지도 따뜻하게 품어 주자.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가 아니라 우리는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다름이, 다양한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사실이 이 세상을 살맛나게 해 주는 것이다.
[필자] 강학중(가정경영연구소 소장) [출처] 웨딩21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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