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준비’하면 대부분 ‘노후자금마련’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경제력’보다 더욱 중요한
선결과제가 있다. 은퇴 후 20년 이상을 함께 지낼 배우자, 자녀, 며느리 등 가족과의 관계회복이다. 특히, 은퇴 후에는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 과거엔 느끼지 못했던 소외감이나 상실감도 강해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은퇴준비의 첫 관문을 부부 유대감 형성 및
관계회복에서 찾는다. 부부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자녀를 비롯해 친척, 사회적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와의 동거를 꺼리는 성향마저 짙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구속받지 않는 노후를 꿈꾸는 예비노년층에게 부부관계 회복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본지는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활기찬 노후와 여생을 꿈꾸는 장노년층이 선결해야 할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2회(상편-부부갈등, 하편-자녀·고부갈등)에 걸쳐 살펴본다. 이번 호는 자녀·고부 갈등의 원인과 해소방법을
분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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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갈등을
막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행복한 노후의 기본 바탕이다. 2010년 어버이날 서울 한강 뚝섬에서 열린‘부모님과 함께하는 건강걷기
대회’에서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나서고 있다. <연합> | 행복한
노후생활은 ‘건강한 인간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 각 기관별 자료에 따르면 어르신들은 대인관계가 매끄럽고 두터울수록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갈등을 막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행복한 노후의 바탕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이 같은 관계는 어긋나며, 관계에서의 파행은 어떻게 표출되고 있을까. 자녀와의 갈등은 우선 두 가지가 꼽힌다.
‘노인학대’와 ‘고부갈등’이다.
최근 자녀와의 갈등이 노인학대로 불거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관련 자료에 따르면 노인학대의 흔한 장소는
‘가정’ (85.6%)이었다. 가정내 노인학대는 2005년 1893건에 이어 2006년 2008건, 2007년 2060건, 2010년
2625건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가정에서의 가해자는 10명 중 7명이 자녀였으며, 아들이 48.4%로 가장 많았고, 딸(12.7%),
며느리(8.4%) 순이었다.
신체적 또는 정서적 학대, 그리고 경제적 학대(착취), 성적 학대 등 유형도 다양한데 방임도 흔한 편이고 유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신체보다는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는 방임과 심리적 학대의 비율이 높다. 부모가 재산이 있는 경우보다 없는 경우 학대 발생률이 높고 건강이
나쁠수록, 그리고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낮아 자녀들의 수발 부담이 가중될수록 학대 가능성도 높아졌다. 즉, 자녀에게 의지할수록 학대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자녀와의 갈등에서 고부갈등도 ‘노인학대’와 맞물려 나타난다. 고부간 갈등은 최근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 과거 시어머니 우세형에서
며느리 우세형 갈등으로,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 장모와 사위 간 갈등 등으로 다양화했다. 노후의 행복을 좌우하는 자녀와의 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자녀·고부갈등, ‘노인학대’ 전이 가능성 어르신이 치매나 건강악화 등을 이유로 자녀와 거주하는,
지나치게 의존적인 관계가 될 경우 자녀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고 ‘고부갈등’이 종종 ‘노인학대’로 이어지곤 한다.
한 상담사는 이에 대해 “해외는 배우자 사별시 노인요양시설을 이용하지만 우리나라는 대개 장남과의 동거를 시작한다”며 “이로 인해 고부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급기야 노인학대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어쩌다 한 번씩 보면 며느리도 시부모에게 잘 할 수 있겠지만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 매일 쌓인
서운함이나 갈등이 ‘학대’의 형태로 표현되기 일쑤다. 자녀와의 갈등은 어느 한 가지 양상보다 여러 갈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존이 심화하면서 자녀의 부양 스트레스 등이 누적되면 노인학대로 비화하기도 한다.
이외에 노인학대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자녀가 다혈질이라거나 알코올 중독인 경우 부모 학대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대를 당하는 어르신들의 특성도 있다. 유독 사사건건 자녀를 괴롭히며 힘들게 하는 경우 자녀들이 굳이 신체적으로 때리지는 않더라도 무시나
외면 등 정서적인 학대를 가하는 경우다.
특히 은퇴 후 어르신들이 우울감이나 상실감을 느끼면서 물질적·심리적으로 자녀들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는 것도 원인이 된다.
자녀들은 “돈은 달라고 하면 주면 그만인데, (부모님께서) 동사무소에 직접 갈 수 있는 데도 대신 시키거나 또 상조에도 가입해 달라고 하는
등 이것저것 부탁하는 게 너무 많아 신경 쓰기가 버겁다”고 호소하다가 학대로 이어진다.
또 학대가 부모와 자녀간 보복성으로 악순환 되기도 한다. 어릴 적 약자인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를 ‘힘이 없으니까 맞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가 자신이 성인이 되고 부모가 노인이 되면 ‘힘이 있으니까 때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정당화하면서 학대를 가하는 형태다.
특히 일선 상담사들은 유달리 갈등이 고조된 가정을 지목한다. 집안 분위기가 학대를 수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우리사회의 세태도
‘공부 못 했고 돈은 없어도 나이가 많으면 대접받는 사회’에서 ‘공부 많이 하고 경륜이 많아도 나이가 많으면 차별받는 사회’로 변한 것도 학대에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부갈등에서 주도권은 며느리로 노인의 전화 김효정 상담사는 “상담 내용이 다양화했다는 건 그만큼
어르신들이 마음 속 고민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이라며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문제나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라고 보면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전했다.
이어 “예전에는 상담을 꺼렸지만 이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고, 어르신들도 사회적인 각종 자원을 활용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노인학대와 관련, 이전에는 어르신들이 “자식 얼굴에 빨간 줄 긋는 행위”라며 많이 창피해하면서 학대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자녀와 법정에 나란히 서서 어르신 스스로 인권을 찾는 경우도 생겼다.
최근 고부갈등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성격이 맞지 않아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보다는 며느리가 직장에 나가면서 손자손녀 양육을 시부모가
맡으면서 겪게 되는 갈등, 그리고 아들의 생활비를 부모가 직접 관리하다가 며느리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면서 갖게 되는 허탈감 등으로 갈등 내용도
다양화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지식 또는 정보활용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한 며느리 우세형 갈등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손자손녀를 돌본 대가로 지급되는
용돈도 며느리가 주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주눅이 드는 상황이 된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달라진 세태에 대해 “경제적 위치나 학력 등 여러 사회적 지위를 보더라도 시어머니 등
부모에게 있던 주도권이 며느리 등 자녀들에게 넘어갔다”며 “장모의 발언권이 세지거나 더 이상 깍듯이 예를 갖춰 시아버지를 대하지 않는 며느리 등
‘무조건적인 효도’를 강요하는 관례도 약화 추세”라고 전했다.
▲비의존적 독립성, 자녀와의 관계 개선 이렇듯 변화한 세태 속에서 자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이 ‘자녀들에게 손 벌리지 않는 것’, 다시 말해 경제적·심리적으로 의존적이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선 상담사들은 이를 위해 어르신 스스로 사회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독립적으로 삶을 주도해야 건강한 관계 회복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강 소장은 “어르신 스스로 즐겁고 건강하게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는 게 자녀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비결”이라며 “자녀들도 성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간섭이나 잔소리가 그치게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사회구조적으로 노인 문제를 효를 강조하며 개별 가정에만 맡기면 노인학대와 같은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기 십상”이라며 “치매인
부모를 놔두고 맞벌이로 일해야 하는 자녀가 학대 충동을 느끼는 구조적인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 소장은 “어르신들의 독립과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건강과 돈, 관계, 그리고 일, 다시 말해 ‘역할’이 필요하다”며 “은퇴 후
경제력과 이어지는 소일거리가 있다면 가장 좋지만, 봉사, 신앙, 영어, 노래 등 뭐든 배우며 스스로 사회적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학중 소장은 “자녀와의 관계를 포함해 관계 개선이나 역할을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왕년의 나’에 집착하지 않고 체면 등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겸손함”이라고 덧붙였다.
김효정 상담사는 “노인학대는 의료나 상담 등 사후처리보다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어르신 스스로도 독립적인 주체로서 삶의 행동양식을 늘려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때려야만 학대인 것으로 인식하는 등 이해가 부족한
경우도 많아 경로당이나 상담센터뿐만 아니라 가족에서 어르신 인권 차원의 권리 교육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학중 소장은 “어르신들에게는 궁극적으로 혼자일 때도, 돈이 부족해도 삶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자녀들과 이웃, 그리고 어르신 스스로 소극적으로 변하고 과거 지향적이며 자신감이 없어지는 노화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노인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우리 모두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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