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사회의 다양한 부분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정상 가족’ 담론이다. 정상 가족 담론은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만을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적 구조 를 뜻한다. 특정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이라고 호명하며 다른 형태의 가족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정상 가족 담론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은 현행법과 제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민법 제779조에 따르면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와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직계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혼인관계와 혈연관계에 포함되지 않는 ▲동성애 ▲위탁가정 ▲황혼 동거와 같은 형태의 가족은 흔히 말하는 ‘정상 가족’에 해당하지 않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들은 가족에게 부여되는 혜택과 서비스를 전혀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발의된 법안이 바로 ‘생활동반자법’이다. 생활동반자법은 특정인과 동거하며 협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을 ‘생활동반자’로 규정하고 배우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혼인 관계가 아닌 개인 간의 결합이라도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 사안이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생활동반자법과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도입돼 시행된 지 오래다.
1999년 프랑스에서는 자유롭게 동거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팍스(PACS)’ 제도를 도입했다. 팍스는 성인 두 사람의 합의에 따라 이뤄지는 관계를 뜻한다. 해당 제도에 따라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혼인과 같이 ▲사회보장급여 ▲소득세 ▲휴가권 등의 혜택이 동등하게 주어진다. 팍스는 프랑스의 출산율 상승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성공한 제도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이는 우리나라에서 발의된 생활동반자법과 대표적으로 가장 유사한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도쿄도 시부야구는 2015년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두 동성 간의 생활공동체를 법률상 혼인에 준하는 파트너십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해당 제도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구 내에서 혼인 가구와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도입 이후 각 구와 시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법적으로 생활동반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생활동반자법이 도입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그리고 우리는 생활동반자법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생활동반자법’, 국회의 문턱을 넘다
(사진 출처·기본소득당 공식 블로그) 지난 4월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는 용혜인 의원의 모습이다. 생활동반자법은 2014년에 초안이 마련됐으나 일부 단체와 개인의 거센 반대로 발의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4월 26일(수)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면서 9년만에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됐다. 이에 다양한 가족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존중받을 권리를 외치는 기본소득당 신지혜 대변인이 들려준 이야기에 주목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과 신지혜 대변인께서는 생활동반자법의 발의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셨는데요. 생활동반자법 도입에 힘을 싣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국민이 살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는 변하고 있는데 법과 제도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생활동반자법과 관련된 논의는 거의 10년 동안 이뤄졌는데요. 실제로 발의가 되지 못하면서 미뤄져 왔죠.
현재 대한민국엔 저출생과 1인 가구의 폭증으로 인한 고독사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사회에는 가족이 아니더라도 서로 적극적으로 돌보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들이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최소한의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된 이후 사회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주장해 오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었나요?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논의를 해왔는데요. 그래서 준비 과정 중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지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거죠. 발의 전엔 반대 측의 의견이 거세서 발의에 동의하는 의원들을 모으기 힘들까 봐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고안했던 방법은 미리 기자회견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여당 국회의원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죠.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한다고 할 때 발의안을 어디까지 공개할 건지 공개 범위를 정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발의 전까지는 많은 곳에 밝히지 않았다가 발의 후 기자회견을 진행해 공식적으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고 알렸죠.
생활동반자법의 도입이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갈수록 위기가 다양해지고 중첩되는 사회에서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민이 적극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돼 돌보는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이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생활동반자법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 국민을 돌보는 아주 중요한 방안 중 하나라고 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기를 바라나요? 우리 모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너무나도 ‘가족 중심적’인 지금의 제도를 ‘개인 중심’으로 변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 변화는 필수적이라고 봐요. 누군가와 생활하면서 법적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기회를 보장하는 제도와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자세가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정치권에서는젠더 갈등을 비롯해 약자들을 향한 혐오가 인터넷에서부터 시작해 물리적으로도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혐오 대상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일상에도 위협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도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규정하는 법과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활동반자법이 그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외롭지 않을 권리, 황두영 작가를 만나다
이처럼 생활동반자법은 새로운 가족 유형이 등장하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현행법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을 법적으로 동등하게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여기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해 열심히 활동해 온 한 사람이 있다. 지금부터 황두영 작가를 만나 민법의 문제점과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자.
안녕하세요. 저는 생활동반자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황두영입니다.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할 당시에 생활동반자법의 초안을 만들었어요. 당시 만들었던 초안을 녹여 2020년 3월에는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법은 삶의 방식을 권고하는 역할도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규정하는 범위에 대한 인식은 역사적으로 바뀌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민법상 ‘가족은 이것이다’라고 규정 해버리니까 실제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과 민법상 가족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죠. 이처럼 민법은 실질적인 가족생활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생활동반자법의 도입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려면 ‘인구구조의 변화’를 얘기해야 하는데요. 예전에는 결혼이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점차 가치관도 변하고 인구구조도 변하면서 더 이상 혼인이 보편적이지 않은 사회가 된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와 함께 살고자 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통적인 이성혼이 꼭 정답은 아니죠. 친구랑 살거나 공동체를 꾸리는 등의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혈연이 아니라면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법적 방법은 혼인밖에 없죠. 여러 가지 이유로 혼인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인데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혼인 제도보다는 동반자와 공유하는 의무를 덜어주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게 생활동반자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동반자법이 도입된다면 같이 사는 친구 또는 애인과의 재산상의 갈등, 폭력의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가정폭력도 과거에는 ‘남자가 여자를 때릴 수도 있지’ 이런 인식이 많았잖아요. 이 같은 잘못된 인식은 여러 사람의 꾸준한 문제 제기로 많이 변화해 왔죠. 그러나 인식 변화로 인한 제도적인 성과들은 여전히 혼인 관계에서만 효력을 가집니다. 동거녀 살해나 폭력과 같은 일이 뉴스에서 많이 보도되곤 하잖아요. 보호받지 못하는 곳에서 날 것의 권력관계에 노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죠.
※ 이 내용은 황두영 작가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자가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변화하는 가족과 우리 사회의 인식
학우의 말말말
길현서 학우(아동22): 반대하는 입장과 찬성하는 입장 모두 이해가 됩니다. 특히 비혼주의자와 독거노인분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법안이라고 생각해요. 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이런 법안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요진 학우(교육심리22): 혼인 관계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타인과 함께 살면서 서로를 부양하고 협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취지의 법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도입 후 ‘가족’이 지니는 의미가 모호해질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이하정 학우(저널리즘22): 저는 생활동반자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혈연이나 법률혼으로 이뤄진 관계에 속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죠. 흔히 말하는 ‘정상 가족’의 형태를 이뤄야만 부여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은 매우 부당합니다.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익명의 학우(문헌정보): 저는 생활동반자법의 도입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정상 가족’이라는 범주 자체가 그 외 형태의 가족들을 ‘비정상’으로 분리한다고 생각해요. 이는 매우 차별적인 개념이죠.
가족의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에 주목하기 위해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을 만나봤다.
현재 사회구성원들의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인식은 어떻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전반적인 인식은 잘 갖춰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활동반자법을 들어봤다는 사람도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생활동반자법을 알고 있는 구성원들도 세대별로 인식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연령층이 높은 분들의 입장은 보수적일 수 있죠. 그리고 성별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체로 여성들이 남성보다는 조금 더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지난 8월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혼과 동거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여러 통계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혼과 동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기 때문인데요. 비혼을 선포하지 않더라도 마음에 맞는 배우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혼자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자녀에 대한 계획도 많이 바뀌고 있어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많고 처음부터 결혼은 하더라도 자녀 계획은 없다는 연인들도 많죠.
구성원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지만 현재 법과 제도는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당사자들은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당장 수술을 해야할 때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도 없고 건강 보험에 부양가족으로 이름을 올릴 수도 없습니다. 직장에서도 모든 혜택이 대부분 기혼 부부 중심이에요. 이처럼 결혼한 가족에게만 혜택을 주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많은 불이익을 받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점을 방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구성원들의 인식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삶의 방식과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의 방식이 소중하듯 다른 사람의 방식도 존중해야 합니다. 점점 개인화되고 지나치게 분열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공동체가 많이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가 함께 더불어 나아가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 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인식 변화가 필요하죠.
서지원 기자 swpress208@hanmail.net
임다영 기자 swpress213@hanmail.net
출처 : 서울여대학보(http://swupress.sw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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