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개인 사업을 하는 신풍속(38·가명)씨는 이번 설 연휴 기간 특별한 업무가 없어도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명절에 가족 및 친척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달갑지 않아서다. 신씨는 지난 설과 추석 때마다 결혼과 정치 등을 놓고 설전을 벌인 만큼, 올해도 새해 벽두부터 괜히 서로 얼굴을 붉힐 바에야 대화를 피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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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맞아 넉넉한 마음을 담은 귀성길은 일찌감치 붐볐다. 이번 설 연휴 기간 고속도로 예상 교통량은 일평균 519만대로 작년보다 약 23.9% 증가할 것이란 게 경찰청과 한국도로공사의 추산이다. 올해는 길었던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첫 설날로 고향과 가족에 대한 반가움은 배가 됐지만, 마음 한켠엔 불편함을 안고 귀성길에 오른 이들도 있다.
이유는 가족 사이 ‘대화법’ 때문이다. 가족들과 친척들이 한데 모이는 명절날 ‘학업·취업·결혼·출산·정치’ 이야기는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기 마련이다. 기성세대(부모)와 MZ세대(자녀)가 각자 살아온 사회 환경과 가치관의 차이로 특히 대화가 잘 풀리지 않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가족끼리 대화를 조심하거나 줄이는 ‘명절 신(新)풍속도’가 펼쳐진다.
얼마 전 직장에서 희망퇴직을 한 전모(36)씨는 “결혼이 아직 급하지 않은데 명절 때마다 부모님과 친척들은 ‘여자가 그 나이 먹도록
아직도 시집을 안 가면 어쩌느냐’는 핀잔을 늘어놓으신다”며 “미혼에 재취업준비생까지 되다 보니 올해 설은 잔소리가 두 배가 될 것 같아 어디 혼자 조용히 바람이나 쐬다 올 작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직장인 이모(41)씨는 “최근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와 지지를 가진 가족 및 친지들과의 대화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감정의 골만 깊어지더라”며 “가급적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조심하려고 해도 같이 TV 앞에서 술 한잔하면 말이 나오기 십상이고, 아직 자녀를 두지 않은 제 선택마저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되기 일쑤”라고 했다.
명절자리 대화를 조심스러워 하는 건 자녀세대뿐 아니라 부모세대도 마찬가지다. 부모로서 자녀 걱정이 되면서도 혹여 관심의
표현이 자칫 잔소리로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미혼 자녀를 둔 박모(65)씨는 “다 큰 자식들이 제 밥벌이하며 차차 결혼도 하고 집도 마련하고 잘 살아갈 것이라 믿으면서도, 부모
된 마음으로 초조하고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인생 선배로서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는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그저 잔소리하는 ‘꼰대’ 소리 들을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그냥 말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명절에 가족 싸움을 피하기 위해선 불편한 대화를 잠시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가족 간 대화 단절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소통이라고 조언한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은 “세대 차이로 민감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 화제는 굳이 좋은 명절날에 꺼내기보다 피해 가는 것도 지혜”
라면서 “그렇다고 입을 아예 다무는 게 상책이 아니라, 서로 질문에 앞서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자랑거리와 근황 등 친근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부터 잘 듣고 나누는 대화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이데일리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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