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TV 프로그램을 보면 요리나 식도락 중심의 쿡방, 먹방이 대세였다. 요즘은 인간관계에 집중된 콘텐츠가 많다.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외딴섬에서 자급자족한다. 장인과 사위‧부자‧남매 등 다소 불편할 것 같은 가족을 등장시켜 에피소드를 만들어 간다. 문제를 유발하는 아이의 행동을 관찰해 나쁜 버릇을 고치기도 하고, 심지어 MBC ‘우리 결혼했어요’(종영) 를 패러디한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2(우이혼 2)’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전자의 경우 가상 결혼이었다면, 후자는 실제 이혼 부부가 등장한다는 점이 놀랍다.
서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느껴서 부부의 연을 끊은 사람들이 저렇게 태연하게 함께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나 싶다가도 돈과
화제성이라는 것이 참 무섭구나 싶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약해질 만큼 약해졌음을 알려주는 신호로도 보인다. 키워주는 부모를 향해 소리를 지르거나, 어른 눈치를 보며 기를 못 펴는 아이, 어둡고 힘들었던 가족 내 불화를 듣다 보면 세상 가족이 정말 다 저렇게 사는 것만 같다. 흘려들었던 소문의 진상을 본인이 직접 얘기한다. 부부는 살다가 참다가 마음에 상처를 입고 깊은 고민 끝에 헤어졌을 텐데. 참 잔인하다.
극과 극 같은 가족, 다른 시선 최근 주목 받는 이들이 있다. 2년 전 이혼한 아이돌그룹 유키스 출신 일라이와 레이싱모델 출신 지연수다. 두 사람은 열한 살
차이를 극복하고 혼인신고에 아이까지 출산하는 등 2014년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이어 미국에서 시부모와 함께 사는 모습을 KBS ‘살림하는 남자들(살림남)’을 통해 보여줘 부러움을 샀다. 그때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였고, 일라이의 가족 또한 미국에 초밥 체인점을 스무 개나 가지고 있는 성공한 재미교포로 비쳤다. 완벽한 가족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들은 결혼 7년 만에 이혼했다. 2020년 이혼 후 ‘우이혼 2’ 프로그램을 통해 2년 만에 다시 만난 일라이와 지연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오간다. 지연수가 결혼을 유지하는 동안 있었던 일을 거론하며 싸우고, 둘 사이 낳은 아들까지 등장해 이혼 가족의 안타까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연수의 주장에 따르면 이혼의 주요 원인으로 고부갈등과 시집살이가 꼽힌다. 시어머니는 레이싱 모델이었던 지연수의 직업을 무시하고 폭언하는가 하면, 폭언 뒤 “아들에게 이야기하면 이혼시켜버리겠다”며 협박했다. 함께 사는 동안에는 남편 일라이가 슈퍼카를 사는 바람에 지연수가 자기의 명품 가방을 팔고 할부금을 갚느라 힘들었다고도 했다.
이들이 이혼 가족 프로그램에 등장하다 보니 새삼 과거 ‘살림남’에서 볼 수 있었던 일라이 어머니의 싸늘한 눈빛과 지연수와의 신경전 등이 회자하고 있다.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척 했으니 시청자를 우롱하고 기만했다고 해도 할 말 없을 듯하다. 유튜브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로 또 다시 말이 많다. ‘재결합한다’ 혹은 ‘못 한다’에 대해 전망하는 콘텐츠도 여럿 등장했다.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다. 시청자에게는 눈요깃거리지만 일라이와 지연수, 그들의 모든 가족에게는 웃지 못할 현실이다.
우리 가족은 서로 잘 이해하는가?
솔직히 이들뿐이겠는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혼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이혼해 혼자 나와 살거나, 대화도 소통도
어려운 ‘무늬만 가족’인 이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아무리 행복한 가족도 서로 상처 주기도 하고 소통의 오류를 겪기도 한다. 잘 되는가 싶다가도 미궁으로 빠져버리는 게 가족 간 다툼이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가족 간 대화가 왜 안 될까 한 번쯤 잘 들여다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부부 혹은 가족 사이에 걸림돌만 치우면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덜할 것이라고 했다.
집마다 삶의 모습이 다르듯 장애물 또한 다 다르다. 대화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소통이 안 되는 가족도
있다. 세대 차이, 사는 형편, 맞벌이, 학원 등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하기에 대화나 소통이 떨어질 수도 있다. 강 소장은 가족 소통을 떨어뜨리는 장애물로 스마트폰을 하나의 예로 들었다. “게임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SNS할 시간은 있는데 가족과 대화할 시간이 없다니요. 가족들끼리 전부 식탁에 앉아 말없이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니 걸림돌입니다. 과거에는 침묵을 미덕으로 알고 개인적인 감정 표출을 금기시하는 문화였습니다. 아내는 남편한테 순종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복종했죠.”
대화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경청(傾聽) 자세도 특히 필요하다. 말이 끝날 때까지 들어주고 기다려 주고 말에 대해서 피드백할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남편은 아내 얘기를 잘 안 듣는다. 엄마는 또 아이들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생각이 다르면 틀어지기 쉬운 정치 문제 등은 부모와 자식 간에 안 하는 것이 좋다. 예민한 주제에 대해서 남들과는 적당히 가리고, 배려하면서 내 가족은 이해해줄 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족'을 '손님'처럼 대하라
통상적으로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밖에서는 잘하는데 집에 들어오면 아주 이상한 사람 같다니까!” 밖에서는 점잖고 자상하고 멋진 남편이 집에서는 전혀 아닐 때가 있다. 집안 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거나,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비해 집에서는 무례하게 행동한다.심지어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까지. 밖에서는 그렇게 친절하고 말 잘 하고 재미있는 아들, 딸인데 집에 오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밥만 먹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남들에게 하는 만큼만 하면 탈이 날 일이 없는데, 부부나 가족은 적당한 선 긋기가 쉽지 않다. 상대방 사정 생각하지 못하고 수위를 넘나들다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
강 소장은 가족이 가까우면서도 서로에게 실망을 안기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가족은 모든 게 보이고 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관계”여서라고 설명했다. 직장 동료는 퇴근해 집으로 오면 되고, 친구가 싫으면 안 만나면 된다. 이웃은 이사 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가족은 계속해서 서로의 삶에 관여하게 된다. 일라이와 지연수 상황에서도 부부는 이혼했으나 그 둘을 이어주는 아들이 있다. 부부가 이혼해도 부모·자식 관계는 어느 한쪽이
죽지 않는 한 영원히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부의 경우도 적당한 심리적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누구라도 한 지붕 밑에서 같이 먹고 자고 지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강 소장은 가족을 가족이 아닌 손님으로 생각해볼 것을 권했다. “대학생들 가르칠 때 부모를, 부모 세대에게는 자식을 손님처럼 대해보라는 과제를 드립니다. 내 자식을 다른 집 자제라고 생각하고 대하라고요. 심리적인 거리두기만으로도 간섭이나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친밀하다가도 어느 순간 피곤하고, 불편해질 수도 있다. 정말 관계가 너무 안 좋다면 당분간 안 만나는 것도 방법이다. 서로 앙금이 남아 있는 상황에 의무적으로 명절 연휴에 만났다가 관계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다시 만나기 전에 관계를 풀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명절에 술이라도 같이 마시기라도 하면 큰 사건으로도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장인‧장모나 시부모 입장에서 각각 사위나 며느리에게 잔소리는 안 하는 게 상책이다. 남편, 자식, 아내를 바꿀 생각은 말고 자신이 먼저 바뀌면 편하다고 강 소장은 말한다.
“가족이 정말 별 문제 없이 산다는 건 엄청난 예술입니다. 심하게 얘기해서 결혼을 안 하는 게 차라리 좋았을 부부들이 있어요.
부모가 되면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고생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하는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아요. 자주 싸우다가 몸싸움으로 가고 별거, 이혼이 되지 않게 하는 마지노선을 정해야 합니다.”
싸움은 지혜롭게, 대화는 부드럽게
강 소장은 현명하게 부부싸움을 하라는 의미로 ‘부부싸움 십계명’을 제시한 바 있다. 때리지 말고, 부수지 말고, 집 나가지 말고,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말고 등이다. 특히 서로의 약점은 건드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아킬레스가 있어요. 그건 학력일 수 있고, 신장, 외모, 벌어놓은 월급 액수, 양가 부모 등 아주 다양합니다. 어디를 건드려야 더 화나게 하는지 더 악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풀기도 하고 자식 때문에 살기도 하고요.” 가정법원 조정위원이기도 한 강 소장은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이혼을 위해 법원을 찾는 부부들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이혼하지 않는 부부 중에도 이혼 생각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부부 싸움할 때 이혼 얘기하면서 싸우기도 합니다. 그렇게 또 싸우다가 냉각기를 가지고 화해도 하고 말입니다. 쉽게 헤어지고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 보여주는 것은 정말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공포입니다.”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첫 마디의 법칙을 기억하라는 강 소장. 첫 마디는 부드럽게 들어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얘기한다. 단, 불편‧불만‧비난은 금물이다. 가능하면 짧게 얘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쌓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차마 말 못하다가 감정이 폭발해도 상대방은 왜 그러는지 모를 수 있다. “상대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상황에 따라 문제점이 있을 때 지적할 수 있겠지만, 존재를 무시하고 모멸감을 느낄 만큼의 인격모독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강 소장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니 우이혼 2에서 지연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는 너의 가족한테 ATM기였고, 감정 쓰레기통이었고, 돈 안 주고 써도 되는 하녀였어”라고 말했다.
이에 전 남편 일라이는 “나는 이제 우리 부모 욕하는 것 듣기 싫고, 엄마 편을 들겠다”고 말한다. 이들도 강 소장이 말하는 결혼해서는 안 되는, 부모가 돼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을까?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다는 부분에서도 말문이 막힌다. 그렇지만 가족의 연은 쉽게 깨지기도 하지만 가볍지 않은 무게임은 분명하다. 혹시 지금 부부 혹은 가족 간 소통에 문제가 있다면 부드러게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강학중 소장이 제시하는 부부싸움 십계명
1. 때리지 말고 부수지 말자. 2. 핵심 쟁점과 ‘지금’에 초점을 맞추자. 3.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말자. 4. 화약고는 피하자. 5. 타임아웃과 파울을 이용하자. 6. 자신의 욕구와 희망 사항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자. 7. 제삼자를 끌어들이지 말자. 8. 장기전을 피하자. 9. 복수하지 말고 부부싸움 후에도 자기 본분을 다하자. 10. 항상 끝맺음이나 화해를 잘하자.
출처 : 데일리임팩트(https://www.dailyimpact.co.kr)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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