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늘어나면서 남성이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등 전통적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몇몇 보험사에서는 남성을 전업주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비경제활동인구 중 육아·가사 노동을 하는 남성 수는 지난해 기준 15만6000명으로 지난 2014년(13만명) 대비 20%나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개발원과 보험업계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통계청의 ‘한국표준직업분류’ 개정내용을 참조해 표준 상해 위험등급표를 만들어 업계에 배포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참고해 자체적으로 인수심사 기준을 마련해 피보험자의 직업을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직업분류에 따라 상해 위험등급을 결정해 보험료율을 다르게 책정하는 보험상품의 특성에 있다. 이에 남성이 전업주부여도 무직으로 등록하면 보험료를 더 많이 납부해야 한다.
A보험사의 경우 전업주부일 때 위험등급 1등급(비위험)에 해당하지만, 무직일 경우에는 위험등급 3등급(고위험)으로 올라간다. B보험사도 마찬가지로 전업주부와 무직의 위험등급 차이에 따라 보장범위와 보험료율의 차이가 발생한다.
A보험사 관계자는 “남성이 전업주부로 보험 가입을 신청하면 디폴트값(컴퓨터 시스템 자체에서 저절로 주어지는 값)에 의해 무직으로 등록 안내가 간다”며 “남성의 경우에만 유선 통화로 전업주부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전했다.
B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가입을 신청할 때 남성이 전업주부로 입력할 수 있다"며 "이후에 언더라이팅(보험계약 인수 여부 심사) 과정을 거쳐 가입 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남성분들이 전업주부로 선택해 가입할 수 있는 회사가 있고 불가능한 회사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직업분류는 특정 근거 규정이나 법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사별 인수지침에 따라 다르다"며 "보험회사가 프로그램상으로 (남성이 전업주부를 선택하는 것을) 막아 놓은 경우도 있고, 남·여 상관없이 선택 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권익위)에서는 지난 2009년 8월 은행이 남성 전업주부를 무직으로 취급해 신용카드 발급을 거부한 진정사건을 성차별로 인정한 선례가 있다.
당시 권익위는 "주부가 소득은 없지만 배우자와 공동생활을 영위하면서 배우자의 소득·재산을 실질적으로 공유해 경제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며 "배우자의 동의와 결제능력에 따라 주부도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 발급을 허용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여성만을 주부로 인정하는 것은 배우자 간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며 당시 은행에 성차별 시정 권고 조치를 내린 사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