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정이 평안해야 업무도 잘 풀립니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은 17년전 국내 대표 교육기업인 대교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가정문제 연구를 일생의 업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큰형인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은 막내 동생에게 경영인으로서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하지만 제풀에 지쳐 회사로 돌아올 것으로 믿었던 강 소장은 뚝심 있게 한 우물을 팠고, 결국 강 회장도 동생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문제 예방’이 평생 신조라는 강 소장을 서울 잠실의 가정경영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나 지속 가능한 기업을 위한 가족친화경영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가정경영’이란 말이 아직까지 친숙한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흔히 가정과 기업 경영은 이질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비슷한 부분도 참 많습니다. 기업의 목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양적인 목표와 질적인 목표가 있고 기획과 결산 등의 절차를 거치는 것처럼,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평가에도 비슷한 과정이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가 경영’이나 ‘학교 경영’이란 말도 널리 사용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정에 경영마인드 접목이 필요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가정’의 개념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가족’이란 말이 부부를 중심으로 피를 나눈 자녀들이 한 지붕에 함께 지내는 대가족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자녀 없이 부부만 사는 가족도 많아졌고, 기러기가족이나 주말부부처럼 따로 떨어져 사는 가족도 늘었습니다. 이혼도 빈번해졌고 부모를 모시고 사는 문제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다 보니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기 위해 경영마인드 도입이 필요해졌습니다.
-가정생활 만족도가 높은 직원이 업무도 잘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이혼 위기에 몰려 있다면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울 겁니다. 반대로 몸담고 있는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업무적으로도 인정 받을 때 집에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회사가 부도 위기에 있거나 동료들과 관계가 좋지 않다면 가정생활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양방향적인 것이죠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많은 기업들이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만드는데 소극적인 이유는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족친화지수가 높은 기업이 생산성도 높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예전보다 우리 기업의 인식도 많이 개선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은 가족친화경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긴급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직원의 가족을 배려한다고 매출이나 이익이 금방 늘어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등 법적인 장치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지만 모든 기업에서 인사상의 불이익을 각오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그것을 누릴 수 있게 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달라지긴 할까요?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여건과 철학을 갖춘 몇 개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족친화경영으로) 손해볼 것이 없다는 정도만 보여줘도 많은 기업이 따라 움직일 겁니다. ‘윤리경영’의 위상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변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윤리경영이란 말도 없었지만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모든 짐을 기업에만 지울 수는 없습니다. 기업은 이익을 내기 위해 움직이는 조직이니까요. 개인의 인식도 달라져야 하고 정부의 지원도 필수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좀 더 피부에 와 닿게 느낄 수 있는 가족친화경영의 장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수 인력 채용에 큰 도움이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돈만 많이 준다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지원자일 수록 자기개발과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각과 결근은 물론 산업재해 줄고 만족도는 높아집니다. 그 결과로 이직률이 낮아지면 회사 입장에서도 큰 이득입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도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가족친화경영이 만병통치약이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이미 충분히 입증이 된 만큼 시간이 지나면 기업의 인식도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 오너나 CEO의 인식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CEO들 중에서도 맞벌이를 하는 이들은 맞벌이 부부의 고충을 잘 이해합니다. 나이가 지긋한 남성 CEO들은 여성의 인권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본인의 딸이 직장을 다니게 되면 관심도가 급증합니다. 이러한 변화들이 쌓이고 공유되다 보면 CEO들의 인식도 크게 달라질 겁니다.
-16년 동안 연구소를 이끌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시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니지만 아니지만 정부 부처에 ‘가족’이 들어가는 정부 부처(여성가족부)도 생겼고 그 산하에 200여개가 넘는 건강 가족 지원센터와 200개에 가까운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도 생겼습니다. 가족친화 인증 기업도 몇 백 개로 늘었고요. 이러한 변화에 일조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16년째 문 안 닫고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만해도 큰 보람입니다. 조선비즈에 칼럼도 연재하게 됐고요(강 소장은 이번 주말부터 격주로 조선비즈에 가정경영을 주제로 한 주말 칼럼을 연재한다).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처음 결심이 흔들린 적은 없었는지요.
같이 사업하자는 제안도 많이 받았고 투자 제안도 많았지만 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3년 해보고 평생 할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1년도 되지 않아 평생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사실 들어간 노력과 시간 대비 수익으로 따지면 낙제점수죠. 그래도 이 일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행복을 돕는 것은 물론 우리 가족도 행복해졌기 때문에 스스로 엄청난 수혜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녀교육 때문에 고민하는 부부가 많습니다. 조언 부탁 드립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 하는 생각은 같은데도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엄마들은 이것 저것 꼼꼼하게 챙기려 드는데 아빠는 대책 없이 긍정적인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랬습니다(웃음). 부부가 일관적인 모습을 아이들 앞에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부가 함께 고민하고 협의해 내린 결론이면 정답이라고 봐야 합니다. 어떻게 완벽할 수가 있겠어요?
-올해 가정경영연구소의 중점 목표는 무엇입니까.
가정경영연구소가 지금까지 가정경영을 바탕으로 행복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올해는 좀더 가정경영 자체에 초점을 두고 운영하려 합니다. 특히 아버지와 남편을 위한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내와 자녀가 남편과 아버지를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부장적인 멘트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남자가 변하면 세상이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올해 안에 연구소를 양수리로 옮길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연구소를 함께 찾은 부부가 주변 환경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두 분 형님과 (강 소장의 작은 형은 국내 대표적인 인쇄출판기업 타라그룹의 강경중 회장이다)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하십니까.
요즘에는 삼형제가 함께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업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두 분 모두 자연에 관심이 많습니다. 몇 번 만나 이야기 나누다 보면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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