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직장인이 된 박모(30)씨는 다가오는 설날이 두렵다. 지난해 추석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이다. 당시 취업준비생이었던 박씨는 외가에 갔다가 큰이모로부터 “취직이 안 돼서 어떡하느냐”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걱정의 말 인줄 알았지만 박씨의 큰이모는 친척들 앞에서 “나이도 많은데 큰 일이다”, “남들은 장가도 갈 나이인데……” 등 걱정인지 화를 돋우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했다. 결국, 박씨의 어머니와 이모는 감정싸움을 한 뒤 한동안 사이가 멀어졌다. 박씨는 “이제 취직을 해서 다행이지만 이번에는 또 어떤 말을 들을 지 몰라 벌써 신경쓰인다”고 말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맞아 가족, 친지들이 모여 정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지지만 사소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큰 다툼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가족문제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명절에 가족 간 갈등의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비교’이다. 특히 자녀의 대학 입시나 결혼, 취직 등을 앞두고 있는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일 경우 서로 처지를 묻다가 싸움으로 번지기 쉽다. 특히 입시 결과가 좋거나 취직 등을 잘한 친척이 그렇지 못한 친척에게 걱정의 말을 건넸다가 가시 돋친 말이 되돌아 오기 십상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과거의 좋지 않은 일로 앙금이 남아 있는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가 지난 일이 수면 위로 올라와 다툴 수도 있다. 부모님의 재산을 둘러싼 형제, 자매간의 싸움도 흔히 볼 수 있는 명절 갈등이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갈등이나 앙금이 남아 있다면 명절 전에 전화나 만남 등으로 어느 정도 풀고 명절에 만나는 것이 좋다”며 “‘왜 이렇게 살이 쪘나’,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 등 생각 없이 내뱉은 첫 인사가 싸움의 불씨가 될 수 있으니 말 조심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부 갈등은 명절에 나타날 수 있는 가족 갈등 중 가장 심각한 유형이다. 시댁과 친정에 가는 문제로 다투거나 명절에 남편이 일손을 돕는 문제로 다투기 쉽다. 지난해 추석이었던 9월 인천에서는 자신의 사위가 종교 때문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과 관련해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다 폭행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명절 때 부부 사이의 다툼은 극단적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1월의 이혼건수는 9013건이었으나 설이 지난 뒤인 2월은 9398건, 3월은 9511건으로 늘었다. 추석 전인 9월에도 9137건에서 추석 후에는 10월 9972건, 11월 9915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역시 9월 9400건, 10월 1만600건, 11월 9700건으로 명절 뒤 이혼이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부부행복연구소 김주언 소장은 “명절 후에는 평소보다 40% 정도 상담이 늘어난다”며 “고생하는 아내에 대해 남편이 무심하게 행동하거나 아내가 시댁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것이 계기가 돼 갈등이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남편이 일손을 거들거나 아내에게 ‘당신이 고생이 많다. 집에 돌아가면 내가 잘하겠다’는 말을 하는 정도의 배려만 해 줘도 부부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