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 “명절 다툼 없애려면 기대치를 낮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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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통계청이 9월 11일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 통계를 보면 설과 추석을 지낸 직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 건수는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가량 많았다. 지난해 추석이 있던 9월 이혼 건수는 9137건이었으나 직후인 10월에는 9972건, 11월에는 9915건으로 800건가량 껑충 뛰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 상담기관에 따르면 명절 후에는 평소보다 이혼상담 신청이 많고, 실제 이혼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달력의 빨간 글씨만 봐도 여성들은 “명절증후군으로 머리가 아파온다”고 하고, 남성들은 “우리도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요즘, “가족도 기업처럼 경영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을 떠올렸다. 강 이사장은 올해부터 ‘좋은 남편’ 모임을 만들어 강좌를 열고 있다. 예방주사를 맞는 심정으로 강 소장을 찾았다.
추석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더 다툰다는 가정이 많습니다. 왜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어야 할 가족들이 모이면 싸울까요. “각각 다른 이들이 모이니까 그런 거죠. 가족은 동질적 집단이 아니라 이질적 집단입니다. 평범한 가족 사이에도 부모와 자식의 세대차이, 부부간의 남녀차이, 과거의 상처들, 며느리 등 새로 유입된 이방인들이 각기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으니 의견충돌이나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은 당연한 것입니다. 명절 때 다툼이 생기는 것은 명절에 생긴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것이 말 한마디나 눈빛 하나로 폭발하기 때문이죠. 많은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싸울 만한 요소들이 증폭되어서이고 특히 요즘 사람들이 잘 안 참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죠.”
사진·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그럼 추석을 가족끼리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우선 기대를 버려야죠. 추석 등 명절증후군을 느끼는 이유는 며느리는 이래야 한다, 사위는 이래야 한다. 시어머니는 어째야 한다 등등 각각 역할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가 실제 수행치에 못미치니 실망하고 서운해하는 겁니다. 기대치를 낮추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가정경영 전문가이십니다. 기업경영과 가정경영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뭔가요.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고 가정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차이입니다. 가정도 부부간 이혼 등 계약관계적인 성격이 있지만 그래도 부모·자식 간은 영원한 관계인 반면 기업은 언제나 해소 가능한 관계라는 것, 기업은 각자 능력에 따른 조건부 관계이고, 가정은 조건 없는 사랑이 바탕이라는 것 등이 차이점입니다. 공통점은 서로 연구 노력하면 발전이 가능하고 방심하면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이죠.
가정경영도 기업이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연말 결산도 하듯 해마다 우리 가정의 새로운 과제를 세우고, 또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결산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상품을 마케팅해 이윤을 내듯 가정 구성원들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모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서비스를 해서 얻기도 하지 않습니까. 기업이나 가정 모두 윤리·투명·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이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를 강조하듯 가정에서도 부부간이나 부모·자식 간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말이나 태도에 신경을 써야 하고요.”
기업의 CEO 리더십이 중요하다면 가정에서의 남편 리더십도 중요할 텐데요. 2001년에 시작했던‘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올해부터 다시 운영하는데,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남편이 되나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많다고 지적받는 층이 남편들이어서 그런 모임을 만들어 캠페인도 벌입니다. 좋은 아버지의 선행조건은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아내가 남편을 변화시키기는 어렵고, 또 교육으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화두처럼 던지고 각자 상황에 따라 실천하면서 적용하자는 의도입니다.
이 모임만이 아니라 단체에서 강의할 때도 가정의 기본단위는 부부인데, 남편의 역할에 대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고 강조합니다. 예전에 남편만 경제활동을 할 때는 전업주부인 아내가 살림을 전담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맞벌이 가정에서도 가사를 모두 아내가 해야 할까, 왜 어머니, 부인, 딸 등 여자만 가사를 맡아야 하는가 등을 생각해보자고 하죠. 사실 이 모임에 참여한 분들은 이 주제에 관심이 많고 변화 욕구나 의지가 있는 분들이어서 스스로 변했다고 하는데, 기성세대 남편들은 아직….”
13년째 가정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13년 동안 한국 가정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외적으로 참 많이 변했죠. 소가족, 1인 가족, 다문화가족 등 가족 형태도 달라졌고 이혼과 재혼의 급증에 동성결혼 등 결혼 풍속도 달라졌습니다. 100세 시대로 대변되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가족 생애주기도 변했습니다. 만혼이 늘고 노인 부부만 사는 가정이 많아졌어요. 무엇보다 결혼과 가정의 가치관이 달라진 것이 눈에 띕니다. 이제 젊은층에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고, 부모 봉양 역시 꼭 부모를 모신다거나 장남만 모신다는 등의 고정관념도 사라졌지요.
그리고 가족을 개인적 영역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으로 인식하면서 외부적 시스템도 많은 변화와 발전을 보입니다. 여성가족부가 탄생했고. 건강가족지원센터·다문화가정지원센터 등이 전국적으로 200여곳 운영 중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보육도 어머니만의 일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여겨져 무상보육, 출산휴가 등의 제도가 정착되어 가는 중이죠. 최근 10여년의 변화는 정말 놀랍습니다. 하지만 법이나 제도의 변화에 비해 아직도 사회관습이나 관념상의 가정은 여전히 고전적 의미가 강하죠.”
전국을 누비면서 강의도 하시는데 가장 많은 질문, 혹은 각 가정의 가장 많은 고민은 무엇인지요. “대부분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럼 저는 ‘다 아시잖아요. 아시는 것, 실천만 하세요’라고 답하죠. 가족 구성원 각자가 참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이 답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기본은 일단 부부가 바로서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는 물론 자녀를 잘 키우는 데도 부부관계가 바르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 자식 농사 이전에 부부 농사를 잘 지으라고 강조합니다. 농사를 짓듯 부부관계도 늘 신경을 쓰고 적당한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줘야 하거든요.”
현 한국 가정의 문제점은 뭘까요. “지금이 과도기인 것 같아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던 과거에서 급격히 여성 중심, 혹은 젊은 세대 중심으로 가고 있으니 서로 당혹스럽죠. 형태는 핵가족이 되었지만 여전히 부모의 영향력이 너무 큽니다. 외국과 비교하면, 가족관계가 너무 끈끈한 것이 불화의 원인입니다. 가족끼리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어요. 성인이 된 자녀를 떠나보내야 하는데 안 보내고,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자녀에게는 간섭과 집착으로 여겨지거든요. 노력해도 안 고쳐지는 것도 있고, 연연하다가 더 중요한 것을 잃는 경우가 많으니 포기가 아니라 수용과 인정을 해야 합니다.”
최근에 재벌들의 상속 싸움이나 혼외자 사건 등 상류층의 가족문제가 더 심각해 보이는데요. “그건 일종의 착시현상일 겁니다. 그들의 삶이 일반인에 비해 더 많이 노출되고 남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부풀려 이야기하기 때문이죠. 잘 나가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돈이 행복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경제적으로 아주 열악한 가정이 가정불화나 가족해체가 심각합니다. 다만 흔히 상류층 가정은 일 중심적이어서 가족이나 가정의 애틋함은 약한 것 같더군요. 밤낮없이 일하고, 수시로 출장을 떠나고 오로지 기업 확장에 신경을 써야 유지되는 재벌기업에서 찜질방 등 오붓한 가족 나들이나 스킨십은 부족하지 않겠어요.”
사진·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아동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신의진 의원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 청소년 범죄를 일으키거나 소아정신과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흔히 말하는 빈곤가정이나 결손가정 자녀라면, 최근엔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너무 바쁜 부모가 연변 이모 등 육아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겨 애착장애가 심한 아이들의 정서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어느 가정에서나 아이가 태어나서 적어도 1년까지는 엄마건 할머니건 초기 주양육자와의 애착관계가 중요합니다. 솔직히 아이의 관점에서 보면 해외 유명 수입차, 명품 브랜드 유아복, 영어유치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돈을 많이 벌겠다고, 빨리 승진하겠다고 우리는 인생에서 너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아이와 관계를 잘 정립하지 못하고 애정결핍을 느껴 일어나는 정서적·신체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번 돈의 몇 배를 투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식이 불행한데 행복한 부모는 없습니다.”
그래도 부모들은 자녀에게 경제적 안정과 명문대 학벌을 만들어주는 것을 의무라고 여기거든요. “그건 우리 사회의 병폐인 쏠림현상 탓입니다. 누가 서울대 갔다, 아무개가 삼성에 취직했다 등의 주변 사람들 이야기만 듣고 무조건 따라하기만 하니까 서로 불행해지는 겁니다. 이제라도 10년 후, 20년 후 우리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할까를 고민하고 서로 이야기해야죠. 밥상머리에서라도 ‘넌 꿈이 뭐야’ ‘넌 뭘할 때 가슴이 뛰니’란 질문을 해야죠. 이런 말을 하면 제 자식들도 ‘너무 비현실적인 말’이라고 합니다만….”
<가족수업>이란 책도 펴냈습니다. 가족이 받아야 할 수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결혼생활 준비부터 수업을 받아야 합니다. 전 항상 젊은이들에게 결혼식 준비만이 아니라 결혼생활 준비를 하라고 말하죠. 집을 지으려면 설계도 하고, 터도 다지고, 기둥도 세워야 하는데 가정이나 가족이라는 집은 짓기도 전에 들어가 버리거든요. 결혼 전에 결혼을 삶의 방식 중의 하나로 여겨 과연 행복하려고 하는 결혼인지, 독신으로 지낼지, 동거형태로 살지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 후엔 부모 수업입니다.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라 부모다운 부모가 되어야죠. 자녀에겐 어떤 부모를 만나는가가 치명적 영향을 끼치니까요. 부모로서의 책임, 대화와 소통도 수업합니다. 대화는 해도 소통은 안 되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중년의 위기, 은퇴와 노후준비, 시부모나 장인·장모로서의 역할, 조부모 역할 등을 체계적으로 수업받을 필요가 있어요.”
결혼생활이 국·영·수보다 중요한데 학교에서도 그런 과목은 가르치지 않고, 직장에서도 리더십 교육은 시켜도 가정이나 가족관계 교육은 드문 것 같습니다. “많은 기업에도 강의를 다니는데, 아직도 기업에서는 가시적으로 기업 이익에 효과를 주는 교육에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점점 가족문제나 행복한 가정 만들기에 대한 강의 의뢰가 들어오고 유한킴벌리 같은 기업은 가족친화팀도 있어서 직원들과 가족을 더불어 의식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한국의 대표적 교육기업인 대교그룹의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16년 전 일이지만 후회는 없는지요. “후회는 전혀 안 합니다. 충분히 고민해서 결정한 일이니까요. 물론 처음에는 남들에게 내미는 명함의 지위, 비서, 연봉, 전용차량과 무엇보다 의료보험이 사라져 좀 아쉽기는 했습니다. 예전에 회사에 출근하면 경비아저씨들이 다 거수경례를 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사무실 입주자로 필요한 물건을 사서 검정 비닐에 들고 다니니 인사는커녕 본 척도 하지 않아 신분 변화를 느끼긴 했지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행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지금까지는 생계 걱정을 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당시에 최소 3년은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바탕이 되었기에 그런 용기와 도전이 가능하긴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가정과 사회에서 어떤 희망을 봅니까. “아직까지는 한국 부모만큼 자녀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도 드물고, 역동적 국민성 덕분에 가족 변화도 잘 수용합니다. 기업 CEO 가운데도 직원 가족들을 위한 복지에도 신경을 쓰거나, 또 딸을 취직시키고 시집 보내는 과정을 경험하며 여성인권에 눈뜬 분들도 많아졌어요. 선거용 정책일지라도 ‘저녁이 있는 삶’ ‘맘편한 세상’ 등의 정책도 나오고, 이 정부에서도 보육, 노인복지 등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서서히 법과 의식의 변화도 보입니다. 그래도 가정과 사회에서 따끔한 훈육이 실종된 것은 좀 아쉽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강 소장이 음료수를 가져다준 여직원을 소개했다. “제 아내입니다. 같이 일합니다.” 몇 분만 마주해도 속이 끓는 부부가 많은데, 집과 직장에서 24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그렇게 표정이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강 소장은 정말 행복한 가정경영을 실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주간경향 1044호(2013년 9월2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