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부부도 싸운다 서진석(38)·김순영(38)씨 부부는 ‘공인된 평등부부’다.
2001년 여성부 제1회 평등부부상을 받았다. 하지만 평등부부라고 싸움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올해 결혼 11년째를 맞은 이 부부도 싸운다. 다른 점 이 있다면, ‘싸움의 법칙’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혼 때엔 생각 밖으로 서로 잘 모르는 게 많잖아요. 자주 싸웠어요. 싸우다보면 너희 집 식구는 어 떻다는 둥, 너 옛날에는 안 그러더니 왜 그러냐는 둥 별별 말을 다 하잖아요. 문제가 있어서 싸우는 건 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상처만 남더라구요. 그래서 싸우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눴어요.”
서-김 부부는 옛날 잘못 들춰내지 않기, 상대방 성격 물고 늘어지지 않기 등 ‘이것만은 지키자’는 불문 율에 합의했다.
김씨는 “한 번 싸운 일은 재탕하지 말고 싸움의 원인이 된 문제만 놓고 싸우기로, 한 마디로 싸움에 충실하기로 했다”며 “때때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싸우고 나면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부부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살다보면 어떤 부부든 크고 작은 싸움을 하 게 되고, 상당수는 이혼으로 치닫기도 한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02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2001년 이혼한 쌍은 13만5천쌍에 달한다.
인구 1천명당 이혼건수(조이혼율)는 2.8로, 세계 3위다. 하지만 “올해엔 부부싸움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가정문제 전문가들은 “부 부관계의 성패는 싸움을 전혀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효과적으로 잘 싸우냐에 달려 있 다”고 말한다. 결혼 2년째인 김승룡(28)·이연주(27)씨 부부도 ‘건강하게 싸우는’ 부부다. 결혼 전에 싸움에 대한 약속을 했다. 홧김에 “이혼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것과 싸운 날 화해한다는 것이다. 연애시절에 사소한 일로 다투다 이씨가 홧김에 “헤어지자”고 말한 것에 김씨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홧김에 한 말인 것을 알면서도 한동안 냉전상태로 지내면서 너무 괴로웠어요. 그래서 약속을 했죠.” 김씨는 “원칙을 세워놓으니 싸우더라도 잠시 분을 삭인 뒤에 얘기를 나누기가 한결 쉬워졌다”고 말했다. 문제를 피함으로써 해결을 포기하는 것보다 싸우는 게 나은 까닭은 부부싸움이 곧 대화이며, 문제의 해결과정이기 때문이다.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전춘애 연구원은 “부부싸움은 의사소통의 한 형태” 라며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 마당에 나가서 다툰다거나, 한 사람이라도 감정이 격해지면 ‘타임아웃’ 을 부르고 정해둔 시간만큼 중단하는 등 싸움의 방법에 대한 계약을 맺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생산적인 부부싸움을 위해서는 먼저 갈등이나 분노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는 “부부는 서로 다른 점에 대해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데에 서 갈등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이 많은 부부가 생존력이 더 높다”고 말한다. 부부의 성향이 비 슷하고 잘 싸우지 않으면 어려움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고, 성향이 다르면 싸우는 일은 많지만 대 처능력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갈등을 내보이고, 서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인정한 뒤에는 해결방안을 함께 만드는 과정으로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의 태도와 방법을 익히는 일이다.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상대방의 어떤 말 때문에 자신이 섭섭했는지, 또는 모멸감을 느꼈는지 말로 표현해야 한다”며 “자신 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모르고 자기 마음속에만 쌓이게 된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얘기 를 잘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 많지 않은 형편이지만, 부부대화법에 대한 훈련을 실시하는 곳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표 참 조). 강 소장은 “미국의 경우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이 보편화해 있지만, 한국은 부부간의 문제를 남에게 알리기를 꺼리는 경향이 크다”며 “하지만 부부갈등을 자연스 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대화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할 때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 은 기자 jieuny@hani.co.kr |